佛法 .SGI

창제에 대한 선생님 지도

혜광리 2013. 12. 4. 10:48

 

 

 

* 대성인은 "苦(고)는 苦(고)라고 깨닫고 樂(낙)은 樂(낙)이라고 열어서 苦樂(고락) 함께 아우러 생각하여 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계시라 이 어찌 自受法樂(자수법락)이 아니겠느뇨" (어서1143쪽)

괴로울 때도 제목, 즐거울 때도 제목입니다. 고락을 뚫고 지속하는 것입니다. '고락 함께"가 매우 깊은 뜻입니다. '고'에 직면해도 물러서면 안 됩니다.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의 '고'를 그대로 '고'라고 깨닫습니다. 그것은 단념하는 것도 도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을 타협없이 직시하고, 그 현실에 창제 근본으로 용감히 도전하는 신앙자의 기본 자세가 나타나 있습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신앙이란 끊임없는 현실변혁을 위한 신심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경애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날이 다달이 태만하지 않고 연마한다면 '무상보취 불구자득' 그대로 자연히 터득할 것은 틀림없습니다.

 

  *1966년 3월, 페루를 처음 방문한 야마모토 신이치는 호텔에서 대표간부와 간담했다. “제목을 부를 때에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본존을 바라보면 좋슿니까”하고 여성 멤버가 질문하자 신이치는 이렇게 답했다.
 
어본존은 대자비의 부처님이십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 고민하는 것, 희망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기원하면 됩니다. 힘들 때, 슬플 때, 괴로울 때는 아이들이 어머니의 팔에 몸을 던져 매달리듯이 ‘본존님!’이라고 부르며, 사심 없이 부딪치면 됩니다.
어본존은 무엇이든 들어주십니다. 마음 속을 다 털어놓듯이, 대화하듯이 제목을 거듭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옥 같은 괴로움도 거짓말처럼,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만약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면 진심으로 사죄하고 고쳐야 합니다. 똑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또 승부를 내야 할 때에는 반드시 이긴다고 마음을 정하고 사자가 으르렁거리듯이, 대우주를 곧 흔들기라도 할 듯이, 끝까지 기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제목을 올려야 합니다.
어서에는 ‘조조(早朝)·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석석(夕夕) 부처와 함께 눕고’(어서 737쪽)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목을 끝까지 부르는 사람은 언제나 어본존과 함께 있습니다. 그것은 현세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어본존이 제천제불(諸天諸佛)이 지켜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오저에서부터 안도할 수 있고,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목은 고뇌를 환희로 바꿉니다. 더욱이 환희를 대환희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무슨 일이 있어도 오로지 제목을 끝까지 불러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신·인간혁명’ 제11권 <개간>
 

 

* 제목의 공덕은 양(量)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찰 때까지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서에 이만큼 제목을 부르라고 양을 정하신 말씀은 없습니다. 기원은 ‘견고한 마음’이고 ‘신심의 후박(厚薄)이며 ‘뜻’과 ‘일념’으로 결정 됩니다.
단, 본인이 결의해서 목표량을 정하는 것은 신심의 표현입니다. 자기가 결의한 만큼 창제하며 끊임없이 깊이 결의해야 합니다.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어서 384쪽)라고 말씀하셨듯이 끊임없이 창제행을 지속한 사람이 반드시 승리합니다.
자신의 생명변혁을 잊고, 굳은 일념이 없는 ‘의존’이나 ‘도피, 겁쟁이의 마음’으로 현실생활의 노력이나 도전을 포기하고, ‘덩굴째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신앙은 불법(佛法)의 본의(本義)에서 어긋 납니다.
창제행은 우리 생명을 변혁하는 ‘인간혁명’의 수행입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일념을 깊이 해서 제천선신을 움직이고 절대승리를 실현하는 ‘서원(誓願)의 제목’이 대성인불법의 창제행입니다.
“일제중생, 남묘호렘게쿄라고 부르는 이외의 유락(遊樂)은 없느니라.”(어서 1143쪽)는 말씀대로 제목에는 매우 깊고 광대한 생명변혁의 공덕이 있습니다.
우리 창가학회 회원은 그 최고의 즐거움을 불교 역사상 가장 깊게 자각하고 만끽했습니다. 최고의 불도수행이고 환희의 원천이 되는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부르는 일이 얼마나 복덕이 넘치는가. 이보다 깊은 생명의 기쁨은 없습니다.
윤타왕과 백마, 백조의 고사는 생명력의 근본을 여는 가르침이며, 동시에 제목에는 사회에 근본적인 활력을 주는 힘이 있다는 것도 나타냈습니다.---소야전답서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