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다이사쿠 SGI회장 선생님 말씀 71
○ 불교의 눈은 이 변화의 實相을 "[제행(여러현상)"은 무상(항상 변화)"이다]라고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주관에서 말하면'성주괴공', 즉 하나의 세계가 성립하여 유전하고 다시 붕괴하여 다음의 성립에 이른다고 설합니다.
○ 불교에서는 「法性의 起滅」을 설합니다. 法性이란 현상의 오저에 있는 생명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합니다. 생사 등 일체의 事象은 그 법성이 연에 닿아「起」즉 출현하고,「滅」즉 소멸하면서 유전을 반복해 간다고 설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死란 마치 인간이 睡眠으로 내일에의 활력을 비축하듯이 다음에 오는 生의 충전기간과 같은 것으로, 결코 기피해야 할 것은 아니며 生과 마찬가지로 혜택이고 즐겁게 여겨야 하는 것이라고 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大乘佛典의 정수인 법화경에서는 생사가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인생의 목적을「衆生所遊樂」이라고 하여 신앙이 투철한 바에 따라, 生도 기쁨이고 死도 기쁨이며 生도 遊樂이고 死도 遊樂이라고 설해 밝히고 있습니다. 日蓮대성인도 「歡喜 중의 大歡喜」라고 단언하시고 계십니다.
○ 佛典에는 「一念에 億劫의 辛勞를 정한다면 본래 無作의 三身이 念念에 일어나느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는 관념이 아니라 시시각각 인생의 궤도수정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억겁의 신로를 다 한다"라고 했듯이 모든 과제를 一身에 받아 全意識을 자각시켜간다, 全생명력을 연소시켜 간다, 그렇게 하여 이루어야 할 것을 전력으로 이루어 간다, 거기에「無作三身」이라는 부처의 생명이 순간순간 솟아나와 인간적 영위를 올바른 방향으로 올바른 길로 이끌어 격려해 줍니다.
○ 불교에서는「共生」을「緣起」라고 설합니다.「緣起」가 인연에 의해 일어남이라고 쓰듯이, 인간계이든 자연계이든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서로 緣이 되면서 現像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즉 事象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個別性이라기보다도 관계성이나 상호의존성을 근저로 하고 있습니다. 일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서로 관계하고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 있는 하나의 코스모스, 철학적으로 말하면 意味連關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대승불교 自然觀의 골격인 것입니다.
○ 불교에서 설하는 인과율은 「무엇에 의해(緣) 老死가 있는 것인가. 生에 의해(緣) 老死가 있다」라는 석존의 原初의 대답이 나타내고 있듯이, 그리한 「왜」라는 물음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색을 깊이하면서 중국 천태지의의 유명한 「一念三千」론과 같이 근대과학과도 충분히 整合性을 갖는 웅대하고도 정밀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 불전에는 「나야말로 나의 주인이다. 어제 다른 누가 주인일까. 나를 잘 억제한다면 인간은 구하기 어려운 주인을 얻게 된다」
「실로 자신을 등불로 하고 법을 등불로 할지어다. 다른 것을 등불로 삼는 일이 없을지어다. 자신에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지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나, 다른 것에 분동되지 말고 자기에게 충실하고 주체적으로 살아라 라고 강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여기에 '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은, 에고이즘에 얽매인 작은 자신 즉 「小我」가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무한하게 因果를 다스리는 우주생명에 융합하고 있는 커다란 자신 즉 「大我」를 가리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