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말씀
* 사명은 완수해야 '사명'이며 거기에 인생을 건 승부가 있다.
'사명'이란 결코 남한테 받는 것도 아니며 미리 누군가에 의해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결심하는 것이다. 단순한 '의무'도 아니며 누군가한테 부탁받는 '일'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자신도 자녀도 가족도 그리고 사회 전체도 행복하게 한다. 그 최고의 긍지로써 걸어가는 사람에게 인생의 영관은 빛나는 것이다.
* 산다는 것은 최후까지 버티어가며 힘의 한계를 초월해 절망과 체념을 극복하고 끝까지 견디어 내는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생명은 영원하다. 인생에 후회를 남긴다면 무엇을 위한 신앙인가? 괴로움이 없으면 즐거울지는 몰라도 향상은 없다. 10의 곤란이 있다면 20의 힘을 내야하고 100의 장해가 있으면 200의 힘을 내야한다. 슬프면 울어라. 맘껏 울고 한번의 눈물로 모두 풀어버리고 눈물의 강을 건너야한다. 눈물의 강에 잠겨 있어서는 안된다. 잘 만들어진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다. 자기 자신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일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어본존님께 아무리"하겠습니다."라고 맹세해도 맹세는 이루어야만 맹세이다. 평소에 제목을 저축해 두지 않으면 정말 어려울 때 제천의 가호를 받을 수 없다. 안일을 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은 편하고 자유롭게 보이지만 최후에는 가장 부자유한 패배자가 된다. 신앙하지 않아도 훌륭한 사람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인 우리는 그 이상으로 더 많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난은 극복해야지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은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눈에 보이는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한대로의 인간이 된다. 마음 하나로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다. 죽어가면서 조차도 '아 즐거웠다. 자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신심의 경애이다.그러한 사람은 곧바로 태어난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습 그대로 태어날 수 있다. 매일매일의 작은 노력이 위대한 힘이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기개가 없고 마음이 약한 사람은 관철할 수 없다. 괴로움이 많은 사람은 필사적으로기원하라.! 1000만편의 제목을 해봐야만 신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용기의 두 글자로 살아라. 울면서 지지말고 울면서 승리하자.
*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그는 "벗과 만나 대화하는 사람은 총명해지고 영지가 연마 되어 간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사상'을 남에게 말함으로써 자 기 자신의 지혜가 더 한층 빛나고 풍부해진다. 말하면 말할수록 그 사상은 보다 명확하게 파악되어 자기 자신의 것으로 해 갈 수 있다. 자유자재로 전개해 갈 수 있다. 소리로 내어 말하면 사람은 "이전의 자기보다 현명해질 수 있다. 그것은 하루의 명상보다 한 시간의 대화를 하는 편 이 나을 정도다"라는 것이다. 정의를 끝까지 말하는 사람은 점점 빛나간다. 철저하게 외 치는 사람이 승리해 간다. 철저하게 움직이고 철저하게 끝까지 말해 가고 싶다. 자신 을 성장시키기 위해. 정의를 넓혀 가기 위해-.
* 대성인이 여성 제자에게 보내신 <법화초심성불초>의 한 구절을 배견하겠다.
'한 번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면 일체의 부처, 일체의 법, 일체의 보살, 일체의 성문, 일체의 범천, 제석, 염마법왕, 일천, 월천, 중성, 천신, 지신 내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 천계의 일체중생의 마음 속의 불성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것으로 그 공덕은 무량무변하다'(어서 557쪽, 통해)라고.
묘법을 부르는 우리들의 음성이 얼마 만큼의 힘을 비침하고 있는가.
'성불사를 함'(어서 708쪽)이다
* 신심으로 변해가자고 계속 생각하고 계속 기원하면 연속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 위한 신앙입니다. 언젠가는 변할거다가 아닙니다. 열심히 하고 있으면 될 것이다라고 공덕받기를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으세요? 그렇다면 서글프지요. 도다 선생님께서는 "기원을 이루고, 꿈을 이루고, 누구보다도 행복해져 가기 위한 불법입니다. 인생을 승리하기 위한 불법입니다. 기원이 이루어져야 진실한 불법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신앙, 기원을 이루게 하는 신심입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현대인은 욕심이 많으면서도 성불이란 대이익을 원하지 않는 점을 무욕이라고 할까, 어리석다고나할까 달리 할말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많은 욕심을 내서 살아있는 자체가 즐거워서 어쩔 수 없다는 절대적 행복경애를 자신도 만들고 친구에게도 가르쳐주시지 않겠습니까!" 라고도 하셨습니다. 더욱 욕심부립시다. 더 큰 욕심을 가집시다. 어떤 것을 기원해도 좋습니다. 사람의 불행을 기원하면 안됩니다만 그 외에 무엇이든 기원해도 좋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원해서 이루고 그 즐거움을 나누어 가집시다. 그것이 광선유포입니다. 공덕이 없는데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불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전해집니다. 어서에 "희열이 몸에 넘치는 고로 난감하여 자찬함이다."<어서 334쪽>라고 있습니다. 즐거워서 어쩔 수 없어 자연히 <불법은 대단합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절복입니다. 공덕을 많이 받읍시다. 용돈이 없는데 누구에게 무엇을 사줄 수 있습니까. 공덕을 많이 받고 나누어 드립시다. 아끼지 맙시다. - 카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