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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華經의 智慧53-최종회

혜광리 2012. 1. 2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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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華經의 智慧53-최종회

 

師弟不二의 경전

계속해서 싸우는 신심을 영원히 계승

‘만인이 부처가 될 수 있다’-부처의 깨달음이며 법화경의 결론이다.

‘만인을 부처로 만든다’-부처나 보살의 목적이며, 광선유포의 실천

 

 

  법화경이란 ‘師弟不二’의 경전이다.

전편에 걸쳐 그 주축이 일관되어 흐르고 있다.

방편품제2에서는 제법실상을 설하여 일체중생에게 평등하게 불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로 인해 그때까지는 성불할 수 없다고 했던 二乘(이승)이 잇달아 성불해 간다.

적문에서는 부처(스승)와 중생(제자)이 不二라는 것을 온갖 수단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악인성불, 여인성불 등(12장)

‘만인이 부처이다’라고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고 한다.

 

‘증상만’과의 싸움이 법화경

권지품제13의 삼류의 강적에는 모두 증상만이 연결되어 있다

<속중증상만, 도문증상만, 참성증상만>

‘증상만’이야말로 법화경의 적이다.

특히 참성증상만은 사람들로부터 성인과 같이 존경받으면서 내면은 악심으로 가득차

‘인간을 경멸하는 자’이다.

 

  법화경은 ‘인간을 존경’하는 부처의 마음과 ‘인간을 경멸하는’ 魔(마)의 마음과의 싸움이다.

‘제육천의 마왕’과의 싸움이 법화경이다.

 

그 싸움을 ‘사제일체’로 행해 갔을 때 비로소 나의 몸에 ‘불계’가 용현한다.

妙法蓮華經의 꽃이 피게 된다.

 

  妙는 스승,法는 제자 일체이다

蓮華는 因果俱時(인과구시)를 나타낸다. 인은 구계로 제자, 과는 불계로 스승,

즉 師弟不二

妙法도 蓮華도 사제불이, 그것이 묘호렌게쿄<법화경>이다.

 

 

  이 어본존을 결코 타처에서 구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이 법화경을 수지하고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흉중의 육단에 계시느니라(중락) 이 어본존도 다만 信心의 二字에 들어있으니 (니찌뇨부인답서1244)

 

  신심이란 실천이며 싸움이다.

 

마키구치선생님은 옥사를 당하셨다

일본의 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마키구치선생님은 투옥되시던해(1943년) “지금이야말로 국난을 구해야만 할 때다”라고

외치시며 봄부터 학생들에게 <立正安國論>강의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해, 7월6일에 투옥, 이듬해 11월에 서거 하셨다.

 

도다선생님은 같은 감옥에서 법화경을 읽고, 그 진수를 각지하셨다.

 

  여기서 法華經의 개경인 無量義經에 대해 살펴보면

무량의경, 법화경,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을 합해서 ‘법화삼부경’이라 한다.

무량의경은 3품으로 되어 있다

 

  序分인 덕행품제1에서는 많은 보살, 대비구가 왕사성 기사굴산에 모여 석존을 찬탄한다.

대표로 서 대장엄보살이 찬탄의 게를 읊는데 그 가운데

其身非有亦非無

非因非緣非自他

非方非圓非短長

非出非沒非生滅

非造非起非爲作

非座非臥非行性

非動非轉非閑靜

非進非退非安危

非是非非非得失

非彼非此非去來

非靑非黃非赤白

非紅非紫種種色

그 몸은 있지도 아니하고 또한 없지도 아니하며,

인도 아니요,연도 아니며,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부처의 몸을 형용하는 34의 ‘아니고’를 늘어놓고 있다.

도다 제 2대회장은 옥중에서 이경문을 사색하고 ‘부처란 생명이다’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正宗分인 설법품제2에는 보살이 신속하게 無上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法이 설해진다.

그 법의 이름은 ‘無量義’로 중생의 기근이 무량하므로, 설하는 義도 무량하지만

모든 實相인 無相의 一法에서 생한다고 한다.

이것을 “무량의란 일법에서 생한다.”고 논하고 있다.

그 일법을 밝힌 것이 법화경이다.

 또 四十餘年 未顯眞實(40여년에는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도다)이라고 말하고

이승(二乘)의 법도, 보살의 역겁수행을 설한 대승경도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 설한다.

 

 

  流通分인 십공덕품제3에는 무량의경의 10종의 공덕이 설해져 있다.

①기근에 따라 종종의 선심을 일으키게한다.

②일게일구라도 들으면 무수한 의에 통달할 수 있다.

③자신도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중생이 생사를 초월하는 것을 돕는다.

④일구라도 설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진정한 보살이 된다.

⑤수지 독송 서사하는 사람은 대보살로 된다.

⑥자신은 번뇌를 갖추고 있어도, 중생의 일체의 고를 단절할 수 있다.

⑦육파라밀을 수행하고 있지 않아도 육파라밀이 자연히 갖추어진다.

⑧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무상보리를 성취한다.

⑨숙업을 일시에 멸진하고 삼매를 얻어 시방국토에 분신산체하여 극고의 중생을 구제한다.

⑩대원을 일으켜 대비를 성취하고 모든 중생을 이익케하여 구제한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 모든 것들은 이 경의 다음에 설해지는 법화경의 공덕이다.

 

 

  다시 법화경의 지혜로 돌아와서

‘부처’란 우주에 편만한 대생명이라는 것이며

구원의 옛부터 항상 이 세계에 ‘영원한 생명’으로서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

자신도 그 ‘영원한 대생명’의 자식이며, 佛子라는 자각이다.

<도다선생님이 감옥에서 법화경을 읽고 각지하셨던 내용>

 

 

  도다선생님의 깨달음도 ‘師弟不二’의 깨달음이다.

구원 이래 니치렌대성인의 제자로서 하나가 되어 활약해 온 그 사실을 ‘상기해낸 것’이다.

本因妙의 불법은 희망의 불법

지금이 구원원초인 것이다.

지금이 시작인 것이다.

과거는 이미 없다.

미래 또한 아직 없다

있는 것은 현재라는 순간뿐이다.

그 현재도 눈 깜짝할 사이에 과거가 된다.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다. 空이다.

空의 상태로 생명은 순간순간 연속되어 간다.

순간 이외에 생명의 실재는 없다.

순간에 행복을 느끼거나 불행을 느끼거나 하는 것이다.

 

 

  이 순간의 생명을 과거로부터의 因果의 ‘결과’라고 본다면 ‘本果妙’의 사고방식이 된다.

그렇게 되어서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이 이렇다. 라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희망은 생기지 않는다.

이 순간의 생명을 미래의 결과를 만드는 ‘원인’으로 보는 것이다.

그 원인도 생명 奧底(오저)에 달한 本因이다.

 

종(縱)으로 뿌리를 구원의 생명에까지 내리고 , 횡(橫)으로 法界에 미치는 本因이다.

그것이 南無妙法蓮華經이다.

 

 

  어본존을 믿고 묘법을 봉창하며 행할 때는 언제나 ‘구원원초’인 것이다.

현재도 미래도 자유자재로 되어간다.

 

 

  상황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모두가 패배한 싸움 같아 보이더라도 그 속에서 ‘이쯤이야!’라고

여기고 일어서서 묘법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증해가는 것이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듯한 생사를 건 싸움 없이 진정한 ‘신심’은 알 수 없다.

손(損)을 득(得)으로. 악(惡)을 선(善)으로. 추(醜)를 미(美)로

바꾸어가는 가치창조의 장절한 싸움이 창가의 마음이다.

그것이 信心이다.

 

  一念에 億劫의 辛勞를 다하면 본래 無作의 삼신이 念念에 일어나느니라(어서790)

<억겁이라고 하는 참으로 기나긴 시간에 걸쳐 다해야 할 신로를 지금의 일념에 다해서 나아간다면 본래 자신의 몸에 갖쳐져 있는 무작삼신의 부처의 생명이 순간순간에 일어난다. >

 

 

  조금 상황이 나빠졌다고 해서 힘이 빠지거나 누군가를 비판하여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는 그런 비겁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보편적으로 종교의 교의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내면 세계를 한정지어 버린다.

그렇게 한정짓는 부분이 창가학회에는 전혀 없다.

 

  한사람 한사람이 완전한 하나의 인격으로서 자유로우면서

게다가 공통된 하나의 사상을 신봉하고 있다. <러시아 문호 아이토마토프>

 

 

  불경의 실천에 철저하라. 인간은 어느 나라 사람이기 전에 인간이다.

니치렌불법의 ‘불경(不經)의 정신’은 ‘한 사람의 인간을 철저하게 소중히 해가는’ 철학이다.

 

영원히 민중의 한사람으로서 민중과 함께 민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잊고 앞으로 혹시라도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나온다면 여러분들이 추방해 가세요<이케다 SGI회장>

 

 

  결국은 천(天)도 버리시고 제난(諸難)도 당하여라, 신명(身命)을 바칠 뿐이로다. 신자(身子)가 육십겁(六十劫)의 보살의 행(行)을 퇴전(退轉)한 것은 걸안(乞眼)의 바라문(婆羅門)의 졸음을 참지 못한 때문이고, 구원대통(久遠大通)의 자가 삼오(三五)의 진(塵)을 경과(經過)함은 악지식(惡知識)을 만났기 때문이니라. 선(善)에서든 악(惡)에서든 법화경을 버림은 지옥(地獄)의 업(業)이 되느니라. 대원(大願)을 세우리라, 일본국의 위(位)를 물려주리라, 법화경을 버리고 관경(觀經) 등에 붙어서 후생(後生)을 기약하라, 염불(念佛)을 부르지 않으면 부모의 목을 베겠노라는 등의 종종(種種)의 대난(大難)이 출래(出來)한다 할지라도 지자(智者)에게 아의(我義)가 타파(打破)되지 않는 한 채용하지 않으리라. 기외(其外)의 대난은 바람 앞의 먼지와 같으니라.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의 안목(眼目)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의 대선(大船)이 되겠노라, 이렇게 맹서한 원(願)은 깨뜨리지 않겠노라. (개목초232)

 

 

  니치칸상인은 “일단이문을 배견하면 눈물이 계속 흐른다

후대의 제자 등은 마땅히 심부에 새겨야 할 것이니라“

 

 

  그때까지는 법화경의 경문에 비추어 대성인 자신이 법화경의 행자인가, 아닌가를 극한까지 검증하고 계셨다. 그런 연후에 여기서 크게 전환하여 광선유포라는 법화경의 혼에 살아가는 자신의 입장을 뚜렷하게 선언하시고 있다

법화경을 ‘기준’으로 해서 자신을 규정짓는 지금까지의 입장에서, 다시 거꾸로 인류를 구제하겠다는 자신의 맹세를 ‘기준’으로 법화경을 활용해 간다는 입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광선유포’만이 법화경의 혼이며, 南無妙法蓮華經라는 대생명의 리듬인 것이다.

인류의 경애를 불계로까지 끌어올리는 싸움이다.

멈추게 하려 해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인류도 반드시 생명의 본원인 묘법의 방향으로 향해 간다.

그 추진의 사명을 짊어진 우리들은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영예이다.

 

한 사람의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종교는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있었던 것이 반대로 인간을 속박하기 시작한다.

법화경마저도 나쁘게 이용하면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권위’로 사용되고 만다.

그 같은 전도(轉倒)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이 바로 사제(師弟)인 것이다.

 

학회도 사제가 없어지면 큰일이다.

 

  불법에서 말하는 사제불이(師第不二)란 무엇인가

물론 육체는 따로따로이다.

‘마음(정신)’ 과 수지하는 ‘법’이 不二라는 것이다

 

법을 바르게 행하고 있는 스승을 구도하는 일,

그 스승과의 不二를 목표로 향상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법’이나 ‘정신’과 상관없이 두목, 부하처럼 자신에게 따르라든가,

형식적으로 나는 누구누구의 제자라든가, 하는 것은 불법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때의 관수라 할지라도 불법에 상위하여 기의를 세우면 이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어서1618)

 

 

  한순간이라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악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렇다.

‘더욱더’라는 마음으로 추궁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月月 日日 강성해지시라 . 조금이라도 해이한 마음이 있다면 魔(마)가 틈탈 것이다. (성인어난사1190)

 

 

  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싸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괴테)<서동시편>

 

 

고뇌와 투쟁, 이보다 더 정상적인 것이 있겠는가? 그것은 우주의 척추이다.(로망 롤랑) <장크리스토프>

 

 

 지금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것을 잘 이해하라.

어떠한 성공의 성과에서도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더욱 커다란 고투를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출현하리라는 것은

만물의 본질 속에 갖추어져 있다. (휘트먼)<대도의 노래>

 

  광선유포도 인간혁명도 마찬가지다. 안일은 멸망의 因이다. 건설은 사투, 파괴는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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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이케다선생님께서 21세 때 도다선생님의 법화경 강의를 듣고 쓰신 감상문

<법화경 강의(제7회법화경 강의)의 감상>

 

 

아아, 나는 법화경의

심원위대함에 경탄한다.

 

인류를 진정으로 구제할 수 있는 길은

법화경이 아니겠느냐.

 

우주와 생명의 근원을

각오케하는 法義

전 인류에게 최고의 인격과 행복을

반드시 얻게 하려고 교시하신 근본원리.

 

 

아아, 내 나이 21세이다.

인생을 출범해서 무엇을 사색하고,

무엇을 하여,

무엇을 이루어 행복의 원천으로 하였느뇨.

 

오늘부터는 늠름하게 나아가리라.

 

오늘부터는 확고하게 살아가리라.

大法의 생명 속에 살아가리라.

고뇌를 이겨내고.

진정한 슬픔은 위대한 인생을

고무(鼓舞)한다.

 

나는 지금, 진실한 대도(大道).

그리하여 생명을 자각하도다.

 

 

엄숙하게 황혼이 깃드는 후지산

아름답고 다채로운 구름.

동쪽에 떠오르는 둥근 달.

그리고 자신의 실재(實在)

나에게 살아가는 생명의 활동이 있다.

그러므로 美의 극치

이 생명 속에 존재하느니라.

 

 

아아!

심심무량한 법화경의 현리(玄理)를 만나,

몸의 복운을 깨닫도다.

도다선생님이야말로 인류의 스승이리라.

 

조국을 걱정하고,

인류에게 최고의 행복을 반드시

가져다 주어야 한다고 매진하시는 대신념.

그리고 정의의,

무엇이라도 태울 것 같은 정열.

 

오로지 모든 중생을 성불시키겠다며

고난과 싸워 大惡世에

대서광을 밝히셨던

니치렌대성인의 대자비에

감루(感淚)한다.

 

 

젊은이는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영원히 앞을 향해.

젊은이는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令法久住를 위해.

 

묘법의 신자.

우리의 행동에 부끄럼이 있을소냐.

나의 마음 오저에 미혹이 있을소냐.

망설이며 주저하는 것도 그대 자신이니라.

 

 

종교혁명 즉 인간혁명이다.

그리하여 교육혁명, 경제혁명이 있고

또, 진정한 정치혁명이 되리라.

 

혼탁한 세상. 사회와 인간을

정화시킬 수 있는 자는 누구이뇨.

학회의 사명 중대하도다.

학회의 전진만이 그것을 해결하리라.

 

 

혁명은 죽음이다.

우리들의 죽음은

묘법으로의 귀명(歸命)이다.

진정한 죽음이 조국과 세계를 구제하는

대기둥이 되리라.

 

 

젊은이여! 대자비를 품고 나아가라.

젊은이여! 대철리(大哲理)를 품고 싸워라.

나는 약관 스물이지만 최고로

영광있는 청춘의 살아가야 할 길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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