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다이사쿠 SGI회장선생님 말씀 47
○ 괴로움이라는 장작을 연료로 해서 환희와 지혜와 자비의 불길이 타올라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불을 붙이는 것이 묘법이며 신심이다. 더욱이 불계, 보살계, 범천, 제석 등의 선(善)의 생명은 창제에 의해서 그 빛남이 늘어나고, 자꾸자꾸 위광세력이 넓혀간다. 우리 소우주 속의 대일천도 대월천도 찬란하게 대광을 발산하여 생명의 어둠을 밝게 한다.
○ 어본존을 배견하면 나의 소우주의 문은 그 자리, 그 때에 대우주로 전개되고, 전 우주를 내려다보는 그러한 유유한 대 행복감을 맛볼 수가 있다. 대충실감, 대 환희, 일체를 손바닥에 넣은 듯한 대 확신을 실감 할 수 있다. 대우주에 에워싸여져 있던 소우주가 대우주를 도리어 에워싸 간다.
○ 묘법(妙法)은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대법(大法)이며, 이것을 가진 사람은 늙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죽음에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신심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한, 생명력의 불은 영원히 계속 타오른다. 생사(生死)를 초월한 대 확신으로 살아 갈 수 있다. 생애, 희망을 불태우며 끝까지 살아간다. 그 원동력의 엔진이 신심이다.
○ 인생 참된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어렵다. 철학적인 과제다. 어떠한 즐거움도 곧 괴로움으로 바뀔 수 있다. 즐거움의 시간은 짧고, 괴로움의 시간은 길다. 또한 세간적인 즐거움은 생명의 피상적인 즐거움이며, ‘환희(歡喜)중의 대환희(大歡喜)’(어서788쪽)인 묘법(妙法)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고 단언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생명경애(境涯)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위한 불도수행(佛道修行)이다.
○ 어디를 가도 인생의 괴로움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극복하는 수 밖에 없다. 극복 할 수밖에 없다면 즐겁게, 기세 좋게 살아가자. 끝까지 분발해가자.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힘의 원동력인 제목을 끝까지 올려가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 겁쟁이는 부처가 될 수 없다. 사자왕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부처가 되지 못한다. 힘들면 힘들수록 용감하게 일어선다. 학회정신의 진수는 여기에 있다.
○ 어떠한 때라도 즐거워 할 수 있는 생명경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마음으로부터 웃으면서 ‘ 아! 즐거웠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라며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신심의 경애다. 그런 사람은 곧 태어난다. 자기가 바라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는 장소에 태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