唱題의 사람이 勝利,幸福의 사람
唱題의 사람이 勝利,幸福의 사람
이 사바세계는 감인(勘忍)의 세계라고 한다.
참고 인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여러가지 일이 항상 있다.
그속에서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괴로워도 어떠한 숙명도 전부 유유히 극복하고
가장 행복한 경애를 열어갈 수 있는 것이 日蓮대성인의 불법이고,
창가학회의 신심이다.
자신이나 가족의 병 또는 죽음, 경제고, 인간관계의 괴로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괴로움, 그밖에 살아있는 한 온갖 싸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다. 어찌할 수도 없는 인생의 현실이다.
“신심”이란 “창제”란 그런것들을 전부 변독위약하는 힘이다.
괴로움이라는 독이 행복이라는 약으로 변한다.
번뇌즉보리로 번뇌가 깨달음으로 바뀌고, 행복으로 바뀐다.
번뇌, 슬픔이 크면 클수록 보다 커다란 행복으로 바꾸어 갈 수 있다.
이것이 제목의 힘이다.
그러므로 제목을 부르는 사람은 무엇도 두렵지 않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무도 작았을때는 약한 바람에 조차 흔들린다.
그러나 큰나무로 되면 어떠한 폭풍우에도 흔들림이 없다.
인간도 생명력이 약하면 작은 괴로움의 폭풍우에 분동되고 만다.
사바세계인 이상, 바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큰나무로 되면 어떠한 대풍에도 태연하다. 오히려 즐겨갈 수 있다.
그러한 인생, 그러한 생명으로 인간혁명해 가기 위한 신앙인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무는 매일 생장하고 있다.
우리들의 창제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매일 자기자신을 복운의 대목(大木)으로
키우고 있다.
10년, 20년, 학회속에서 신심을 관철해 나가면 이윽고 반드시 대수(大樹)로 된
복운이 분명하게 눈에 보이게 된다.
묘법은 우주의 최고의 보배이다. 창제하는 것은 매일, 나의 생명에 보배를 쌓고
있는 것으로 된다.
한편 생명속의 과거의 죄업은 청정한 물에 더러운 물이 밀려나듯이,
깨끗이 씻겨간다.
그러므로 완전히 청정하기까지는 어느정도의 시간은 걸린다.
처음에는 아주 더러웠던 물, 즉 자신의 숙명과의 싸움이 있다.
그것도 창제의 힘으로 가볍게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속”하는 것이다.
이윽고 완전히 생명이 청정해 지면, 점점 모든것이 잘되어 간다.
복덕에 가득찬,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인 행복’의 경애로 반드시
되어간다.
무슨일이 있어도 즐겁다.
명성이나 재보가 없어도 만족스럽다. 일순일순이 최고로 충실하게 된다.
기쁨에 넘쳐, 모든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무엇을 보아도 옳고 그름을 알고
본질을 알 수 있다.
무슨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 줄 수가 있다. 그러한 자신으로 되어간다.
그러므로 행복으로의 길은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니다.
광포의 세계속에는 어쨌든 제목을 끝까지 부른 사람만이 최후에 승리한다.
반드시 “절대의 행복경애”, 즉 “부처의 경애”를 획득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분명하게 기억해 두면 인생은 영원히 반석과 같다.
초조해 하지말고 끝까지 기원해 가면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대로의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
제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南無妙法蓮華經는 대성인의 이름이시고 생명이시다.
제목을 부르는 사람에게는 대성인의 생명이 솟아 오른다.
반드시 부처로 되어간다.
언제까지나 가난해서 괴로워 하는 부처는 없다.
매정한 부처나 심술궂은 부처는 없다.
인생에 지는 약한 부처는 없다.
왜냐하면 부처란 “절대로 승리하는 사람의 이명(異名)”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스피치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