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 .SGI

이체동심으로 南無妙法蓮華經 봉창하는 바를 生死一大事血脈

혜광리 2010. 11. 23. 17:29

 

 

 

「총(總)하여 日蓮의 제자(第子) 단나(檀那)등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 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이 되어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日蓮이 홍통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더군다나 日蓮의 제자중에 이체이심(異體異心)의 자가 있다면 예컨대 성(城)안에 있는 자가 성을 파괴(破壞)하는 것과 같으니라」(생사일대사혈맥초 1337쪽)

【통해】

원래 日蓮의 제자 단나가 자기와 타인, 이것저것 격의(隔意) 없이 물과 물고기라는 생각으로 이체동심(異體同心)으로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것을 생사일대사의 혈맥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日蓮이 홍통하는 법의 간요(肝要)는 이것이다. 만약 제자 단나가 이 뜻을 명심해서 지켜 나아간다면 광선유포의 대원도 성취할 것이다. 이에 반(反)해서 日蓮의 제자 중에 이체이심(異體異心)의 자가 있으면, 그것은 예를 들면 성(城)안에 있는 자가 성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강의록】

여기는 이체동심의 인간 관계 속에, 총해서 생사일대사의 혈맥이 유통되는 것을 시사하신 곳이며 널리 일체중생이 성불되는 혈맥을 잇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자세를 밝히신 어문이다.

이 어문에 관련하여 이체동심의 자세에 대하여 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체동심의 화합승단(和合僧團)이 되어야만 비로소 총(總)하여 생사일대사의 혈맥이 흘러 통한다는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체동심의 원리에서 중요한 점은 첫째, 이체(異體)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나 입장, 특성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그 당체를 빛내는 것이 日蓮 대성인의 불법인 것입니다.

<어의구전>에는, 「앵매도리(櫻梅桃李)의 각기의 당체를 고치지 아니하고 무작삼신(無作三身)이라고 개견(開見)하니라」(어서 784쪽)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체현조(自體顯照)의 모습으로써 광선유포를 위해 싸워 나가는 속에 자신의 인간혁명의 발자취가 있는 것입니다. 개성의 면에서나 재능의 면에서도 다종 다양한 사람들이 자체(自體)를 현조(顯照)하면서 광포라고 하는 신세기의 산맥을 향해 갈 때 비로소 총체적인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체동심의 두 번째 원리이며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대성인은 「자타피차의 마음 없이 수어의 마음으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자기라는 존재, 남이라는 존재 또 이것저것이라는 갖가지 입장이 있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인간의 마음에 교류가 없고 각자가 자기의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자기의 감정만을 근본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에서는 인간 관계가 여지없이 부서지고 맙니다. 이러한 인간 집단에서는 이미 어떠한 혈맥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수어(水魚)의 마음」이란 물고기는 물고기, 물은 물로서 각각 다른 존재이면서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재가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소중히 하는 일입니다.

물(水)이란 자신을 둘러싼 인간 관계이며 어(魚)는 자기 자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익숙하게 지내듯이 이체동심의 화합승에 친근하고, 그것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며 공경하는 모습이 「수어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수어의 마음」을 이루어 나가는 근원, 바꾸어 말하면 이체동심의 ‘동심’이란 어본존을 믿는 마음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서에 「日蓮과 동의(同意)」라면(어서 1360쪽), 또 「우리의 동류(同類)들은 이진삼진(二陣三陣)이어져서」(어서 910쪽)라고 말씀하셨듯이 광선유포의 대목적을 나의 사명으로 하는 일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의 대원도 이루어질 것이니라」의 어문은 그 이체동심의 단결이 있는 곳에 반드시 광선유포는 성취된다는 단언(斷言)이십니다. 이체동심의 실천이 없이 그저 때만 기다리고 있다든가 입으로만 외치고 있다면 광선유포는 실현할 수 없습니다. 광선유포를 자신의 사명으로 하여 「여래의 소견(所遣)으로서 여래의 사(事)를 행하는」 사람들의 공덕은 바로 「부처의 지혜로서도 헤아리기 어려운」 경문 그대로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서 「日蓮의 제자 중에 … 」 이하의 어문은 이체이심의 자는 사자신중(獅子身中)의 벌레이며 최대의 적이라는 말씀이십니다. 이체동심의 단결을 문란케 하고 생사일대사의 혈맥을 끊어 버리기 때문에 그 죄는 큰 것입니다. 불법에서 말한다면 쉽게는 오역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파화합승의 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것을 논하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시 무거운 ‘비방정법’의 죄에 해당되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불법의 근원인 생사일대사혈맥 즉 妙法蓮華經를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심(異心)’이란, 근본은 日蓮 대성인의 뜻에 배반하는 것입니다만 누구도 처음부터 대성인을 배반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심에 빠져 버리는가? 그 이심의 본원은 아집(我執)이며 자기의 이익, 감정, 만심(慢心)을 중심으로 한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 교만을 중심으로 나아가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체이심에 떨어져 불평불만이나 원질이 소용돌이치게 된다.

결국은 ‘성자로서 성을 파괴하는’ 대원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석존 재세 시대의 제바달다, 日蓮 대성인 재세 시대의 니치교(日行), 대성인 멸후의 닛쇼(日昭) 등의 오노승이 그 대표적 예이다.

【신·인간혁명】

신이치의 강의에는 늘 새로운 촉발(觸發)이 있었다.

<생사일대사혈맥초>의 강의 때였다.

「총(總)하여 日蓮의 제자 단나 등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 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이 되어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바를 생사일대사의 혈맥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日蓮이 홍통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어서 1337쪽) 이 일절에 들어가자 신이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군은 이 어문을 가슴에 새기어 생애 잊지 말고 서로 훈계하며 이체동심의 단결로 광선유포의 총마무리를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광선유포는 불멸의 흐름으로 만들어집니다. 대성인이 돌아가신 뒤, 왜 日蓮 교단은 분열해 갔는가. 그것은 닛코 상인을 중심으로 단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이와 더불어 권력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의 지위, 입장 등에 강한 집착을 갖고 명문명리에 휩쓸려 갑니다. ‘자기 중심’으로 되어 가는 법입니다.

그러면 신심으로써 단결할 수 없게 된다. 그것으로는 어떠한 학회의 역직을 맡고 있다 해도 신심의 패배다.

신심이란 결국은 이 ‘자기 중심’적인 마음과의 투쟁입니다.” (9권 2장 봉추)

【사이토 교학부장 강의록】

여기서는 생사일대사혈맥의 세 번째 의의에 대해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이체동심의 화합승 중에서 단결하여 신심에 면려해 가는 것이 생사일대사혈맥이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이체동심이 아니면 성불의 법인 妙法蓮華經는 널리 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자타피차의 마음’이란 자신과 타인을 차별하여 단절케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승려와 재가 신도를 차별하는 마음, 혹은 자신의 이해만을 생각하여 타인의 일을 돌아보지 않는 에고이즘의 마음 등이 이것에 해당합니다.

‘자타피차의 마음 없이’란 그러한 차별의 마음을 없애고 일체가 평등하다는 마음에 선다는 것입니다. 신심의 마음을 서로 존중하고 서로 격려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수어라는 생각’이란 조직 속에서 각자 각자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서 서로 존중해 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주변의 여러 사람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위 사람들을 소중히 해 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화합승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히 해 가는 것입니다.

‘이체동심’의 ‘이체’란 각각의 처지나 특징·재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서로 존중해 가는 것입니다.

단결이라는 것은 각자의 차이를 없앤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개성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다양성이 전체로서 크나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열쇠가 ‘동심’입니다. 이것은 어본존을 믿는 마음,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는 마음이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멋대로의 아견이나 감정을 억누르고 광선유포라는 대목적 아래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전진해 가는 것이 이체동심입니다.

혼자만이어서는 아견이 되고 말아 올바른 신심은 불가능합니다. 조직을 떠나 생사일대사의 혈맥은 없습니다. 도다 선생님이 “학회의 조직은 도다의 목숨보다도 소중하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문하가 단결해 가는 것이 당신의 홍통의 결론이며, 그 단결이 있다면 광선유포의 대원도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SGI의 조직을 지키고 구축해 가는 것이 광선유포의 길에 통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SGI의 조직을 교란하는 일은 광선유포를 저해하는 대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대성인의 불법은 말법만년의 전 인류를 위해 남겨진 불법이며 그 계승도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조직인 화합승이라는 공적인 전체의 입장에서 이루어집니다.

법주라는 것은 본래, 화합승의 대표로서 화합승을 총괄하고 광선유포를 추진해 가는 존재였습니다. 결코 법주 한 사람이 불법을 독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제2조 닛코 상인은 법주라 해도 불법의 원칙에 위배하여 자기 멋대로의 주장을 말한다면 그러한 법주를 등용해서는 안 된다고 유언하시고 있습니다. 장래에는 당치도 않은 법주가 나오는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조심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지금 닛코 상인이 예견하신 그대로의 사태가 되었습니다.

SGI의 회합에 참석하면 아무리 작은 회합이라도 동지와 동지의 만남 속에서 자신도 열심히 신심에 면려해 가자고 촉발을 일으키게 됩니다. SGI의 조직에는 신심을 격려하고 사람들을 올바른 인생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SGI에 日蓮 대성인의 생사일대사혈맥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SGI의 조직에서 멀어져서는 안 됩니다. 도다 선생님도 학회를 떠나서 행복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창가학회·SGI와 함께 걸어가는 곳에 올바른 신심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대성인의 문하라고 자칭하면서 불법을 계승하는 화합승을 파괴하는 자에 대해, 대성인은 성을 지켜야 할 사람이 내부에서부터 성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체이심의 자’라는 것은 광포의 목적을 잊고 자신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대성인의 가르침이 아닌 자신의 이해나 아견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실로 지금의 닛켄과 닛켄종에 해당합니다. 대성인의 마음에 위배하고 있는 그들은 불법을 내부에서 파괴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회는 닛켄종을 엄하게 파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성인은 이체동심이면 어떠한 싸움도 이길 수 있지만 이체이심의 자는 아무리 많이 있어도 어떠한 일도 성취하지 못하고 반드시 멸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SGI 속에서 이체동심을 잊고 서로 다투면 기뻐하는 것은 닛켄종입니다. 또 어떠한 이유가 있어도 동지가 서로 대립하여 싸우는 것은 결국 신심을 파괴하고 공덕을 소멸시키고 맙니다.

서로 다투는 것은 말법이라는 시대의 특징입니다. 우리들은 말법의 오탁한 생명에 더럽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신심이라는 청정한 생명을 불러일으켜 다투는 마음을 뿌리쳐 가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심이라는 청정한 생명을 잊으면 이체동심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반대로 이체동심이 있으면 신심은 더욱 증폭되어 깊어지고 공덕도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이체동심은 「지금 日蓮이 홍통하는 바의 구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성인이 홍통하는 바의 결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중요한 이체동심을 결코 소홀히 하는 일 없이 전진해 갑시다.
(제2회 생사일대사혈맥초강의, 2001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