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선생님 말씀 2
○ 창제란 괴로움을 변독 위약하는 힘이다. 괴로움의 독이 행복이라는 약으로 바뀐다. 번뇌 즉 보리로 번뇌가 깨달음으로 바뀌고, 행복으로 바뀐다. 번뇌, 슬픔이 크면 끌수록 보다 커다란 행복으로 바꾸어 갈 수 있다. 이것이 제목의 힘이다. 그러므로 제목을 부르는 사람은 무엇도 두렵지 않다. 아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생명력이 약하면 작은 괴로움에도 분동된다. 그러나 창제가 거듭되고 쌓이면 생명력이 강해진다. 그러면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묘법은 우주 최고의 보배다. 창제하는 것은 매일, 매일 나의 생명에 보배를 쌓고 있는 것이다.
-창제를 하면 생명 속의 과거의 죄업은 청정한 물에 더러운 물이 밀려나듯이 깨끗이 씻게 간다. 그러나 완전히 청정하게 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자기 숙명과의 싸움이 있다. 그것도 창제의 힘으로 가볍게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속하는 것이다. 이윽고 완전히 생명이 청정해지면, 점점 모든 것이 잘 되어 간다. 어쨌든 제목을 부른 사람이 최후에는 승리한다. 반드시 절대적 행복경애, 즉 부처의 경애를 획득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근본은 이것 하나만 기억해 두면 인생은 반석 같다.
○ 초조해 하지 말고 끝까지 기원해 가면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 제목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묘호렌게쿄는 대성인의 이름이고 생명이다. 제목을 부르는 사람에게는 대성인의 생명이 솟아오른다. 반드시 부처로 되어 간다. 언제까지나 가난해서 괴로워하는 부처는 없다. 매정한 부처나 심술궂은 부처도 없다. 인생에 지는 약한 부처도 없다. 부처란 절대로 승리하기 위한 이명이다.
○ 신앙자라해도 아무것도 특별한 것은 없다. 훌륭한 사회인이고 양식과 예의의 사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좋은 시민, 좋은 부모,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자녀로 되어 가기위한 신앙이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자신의 경애를 높여가기 위한 불법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일로 가정에서 싸우는 일은 현명하지 않다. 그럴수록 창제하는 편이 가치적이다. 가족 중에서 그다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몫까지 자신이 창제하고 기원해 드리면 된다.
○ 제목은 빛이다. 백 천만년 동안 어두운 곳도, 등불을 넣으면 한 순간에 밝아지는 것처럼, 기원 한 순간부터 생명의 암흑은 사라지는 것이다. 인과 구시이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대 확신의 기원이 필요하다.
○ 기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투철한 기원이면 머지않아 반드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제법실상이다. 그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확신해 가는 것이 신심이다.
○ 신앙이란 불멸의 희망이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투쟁이다. 그 근본이 기원이다. 기원하면 희망이 확신으로 변한다. 그 확신의 일념이 삼천나열로 전개되어 희망을 성취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백 천만년 계속되었던 암흑도 밝아지는 것이다. 반드시 태양은 떠오른다. 아니 이미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 중요한 것은 자기체험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의 체험은 믿게 됩니다. “희열이 몸에 넘치는 고로 난감하여 자찬 한다” - 즐거워서 어찌할 수 없어 자연스럽게 불법은 대단합니다 라고 남에게 말하게 됩니다. 이것이 절복입니다.
[절복의 방법]
1) 상대방의 고뇌를 알고, 그 고뇌를 잘라 없앨 것
2) 확신을 가지고 말해 줄 것
3) 그 사람과 동일 체험담을 들려 줄 것입니다. 교학은 필요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