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적(敵)이 없다.
손바닥으로 하는 놀이는 2가지가 있다. 손바닥과 손등으로 편을 가르는 ‘하늘∙땅’ 놀이와 손가락의 변화로 승자를 정하는 ‘가위∙바위∙보’놀이가 있다.
하늘∙땅’ 놀이는 서로 죽는 상극의 게임. ‘하늘∙땅’ 놀이는 ‘하늘’아니면 ‘땅’이라는 상극(相剋)만 존재하여 선택과 동시에 적이 되고, 편이 갈리면 싸움을 말리고 중재할 중립지대가 없다. ‘하늘∙땅’ 놀이는 이판사판 싸우는 지금 우리들의 경쟁처럼 오로지 이기기 위한 전투, 생존을 위한 피 튀기는 경쟁을 한다. ‘하늘∙땅’ 놀이판은 단세포 아메바처럼 자기만 옳다는 주장, 자기위주의 판단, 남을 배려하지 않는 독선으로 세상을 위태롭게 한다. 대립의 칼날이 강할수록 서로의 상처는 깊고, 세상은 각박하고, 위기에 대한 공동 대처와 개인의 노력은 실종된다. 승부에 집착하는 현대인은 투우사처럼 투우의 등에 칼을 꽂으려는 행위(색깔 논쟁, 상대 의견을 전면 부정하고 투쟁하는 운동주의, 나와 다르면 모두 틀렸다는 극단적 흑백논리, 인위적 편 가르기)로 싸움과 혼란을 만든다.
‘가위∙ 바위∙ 보’ 놀이는 경쟁 속에 조화가 있는 게임. ‘가위∙ 바위∙ 보’놀이는 상극(相剋)이 있으면서도 상극을 깨는 중간(중용)자가 있다. 가위와 바위가 대립할 때 중간자인 보가 개입하면 승부는 무효가 된다. (가위와 보가 대립할 때는 바위가 중간자, 보와 바위가 대립할 때는 가위가 중간자) ‘가위∙ 바위∙ 보’놀이는 경쟁하되 조화를 찾는 진보의 원리, 싸움으로 순서를 정하되 상대를 인정하는 신사의 모습이다. 조직이 발전하려면 건전한 경쟁을 하되 불필요한 과잉경쟁은 피해야 하고, 개인이 행복하려면 자아를 갖추되 함께 하는 마음으로 인간 장애물을 피하고, 이성과 감성, 물질풍요와 정신적 자존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가위∙바위∙보’ 놀이를 통해 서로 행복한 길을 모색해 보자.
1) 행복은 적이 없어서 평온한 상태
가위∙바위∙보는 대립을 무효화시키는 중간자가 있다. 가위와 보가 대립할 때 중립군인 바위가 개입하여 싸움을 말린다. 인생은 이익과 자존감 때문에 부딪힘의 연속이다. 흑과 백(白) 사이에 회색이 있고, 0과 2가 사이에 1이 있는 것처럼, 마음의 중간자인 중용의 자세가 있어야 부딪힘을 줄여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지금 바로 이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결과로 이기려면 일단 마음이 안정시켜 힘을 비축해야 한다. 성급한 판단으로 비극을 초래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지 말고, 양보와 희생, 적극적인 의사소통,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조화감각으로 내 마음 안에 심리적 비무장 지대를 만들어 적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정의가 서로 좋은 가치라면, 행복은 서로 적대감 없어 평화로운 상태다.
2) 지면서 이기는 전략으로 얻는 행복
상대가 나를 이기겠다고 바위를 내면 일부러 가위를 낼 수 있는 전략도 필요하다. 지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기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최고와 효율을 통해 물질적 성장을 하였지만 정신은 피로도가 높아졌고 퇴보했다. 소유할수록 불안하고, 승부에 집착하여 서로의 상처를 만들고, 여물지 못한 행복을 통째로 잃고,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간다. 자기를 보호해 줄 연줄과 조직, 대리만족 대상을 찾지만 이 또한 허구다. ‘지금 이긴다고 인생이 행복할까?’ 스스로 자문하고, 큰 이득도 없는 승리,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활동이라면 양보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편이 이겨야만 산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지면서 평온을 찾고 결과로 이기는 큰 게임을 해야 한다. 승부를 초월해야 지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
3) 인정으로 함께 하는 행복.
가위∙ 바위∙ 보는 서로는 적이면서 서로를 인정한다. 세상에 대립과 싸움이 많은 것은 서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의지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자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면 전쟁이 되고, 조직의 이익만 앞세우면 분쟁이 되고, 자기 눈으로 상대를 보면 미움이 생긴다. 나의 눈으로만 상대를 보면 답답하지만,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면 애틋한 사랑의 대상이 된다. 싸움 자리에 양보와 인정이 스며들면 서로는 필요한 존재가 되고 서로 사는 길을 찾는다. 남을 인정하고 아끼면 개인 간에 막힌 불신의 벽, 남북 간의 분단의 벽, 세계 무역의 장벽도 무너지고, 생명은 생명으로 이어지고, 행복은 행복으로 증가한다. 봉황새도 한 쪽 날개로는 날지 못한다. 양쪽 날개가 합동작전을 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해야 저항을 줄이면서 나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4) 정해진 결과를 수용하는 행복 .
가위바위보 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한 번 결정된 결과는 뒤집을 수 없다. 승복해야 한다. 이미 결정된 일을 인정해야 에너지를 보호한다. 행복하려면 사물과 현상을 똑 바로 보고 신중하되, 그 결과가 기대를 배신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편하다. 죽음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정해진 판을 의지로 바꾸지 못한다. 아픔이 있더라도 사랑의 혼을 앞세우고, 손해를 보더라도 초월하는 성숙함을 발휘하고, 내 것이 아닌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고, 세상은 서로 함께 사는 공간임을 수용할 때 평화롭다. 수용해야 행복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