宇宙生命과 人間 生命과의 관련성 중심으로 生命論 전개해야
生命이란 무엇인가
이번에 본지에서는 우리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리고 生과 死에 대해서, 즉 佛法的으로 생명론을 탐색하여 연재하고자 한다. 모든 생명에 대한
탐구가 과학과 철학을 기본으로 해 왔으나 여기에서는 그 흐름에 佛法을 도입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오히려 佛法 자체를 기저(基底)로 해서 佛法이 밝히는 원리와
서양의 과학, 철학과의 관계도 함께 고찰해 본다.
생명론이라고 하면 기계론(機械論), 생기론(生氣論), 신생기론(新生氣論), 생체론(生體論),
전체론(全體論) 등의 생물학 기초론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틀림없이 과거에 생명론으로서 논의된 이론은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논술(論述)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생물학적 생명에 초점을 맞추는 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더구나 지금은 생명과학의 경이적 발전이 이러한 생명론의 방향을 강력하게 유인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적 성과를 무시한 어떠한 철학적 고찰도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양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론에 있어서나 생체론에 있어서도 그 자체로 충족하는 이론은 아닌 듯 싶다.
비록 생물학 기초론은 범위 내에 제한했다고는 하나, 현재의 생명론은
단순한 기계론, 생기론, 생체론을 초월한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내포(內包)하고 지양(止揚)한 생명관, 세계관이 요청되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된다.
필연적으로, 생명론은 철학적 사색까지도 내포하려고 하는 한 인간적 생명을 핵심으로
생물학 물리학을 기초로 하여 생물학적생명, 무기적(無機的)생명(철학적으로 보면 우주생명)과
사회적 생명, 문화적 생명의 영역으로 확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생물학적 생명은 당연히 단세포생명과 다세포생명으로 대별될 것이다.
인간적 생명은생물학적 생명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사회와 문화의 모태(母胎)이다. 인간이라고는 하는
생명체의 고찰(考察)에는 심리학(과학적 측면)과 사상, 철학이 큰 비중을 점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생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과학과 철학의 양면에서
많은 계층을 이루는 것으로 기술(記述)분류(分類)되어 가는 것 같다.
여기에서 생명론으로서 사용하는 생명이라는 말은 무기적 생명(우주생명)에서
인간적 생명의발로(發露)로서 구축되는문화적 생명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주생명과 인간생명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생명관을 전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것은 지금까지 논해져 내려온 여러 가지 생명탐색(生命探索)이
과학과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비해서, 여기서는 그 흐름 속에 佛法을 도입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佛法 자체를 근본으로 해서 佛法이 밝히는 원리와 서양과학과 서양근대철학, 현대철학과의
관계를 탐구해 보려고 한다. 서양과학에 의존한 생명론을 과학적 생명론이라 하고
주로 생(生)의 철학자의 고찰을 철학적 생명론이라고 부른다면 佛法을 원천으로 한 생명의 탐색은
불법적(佛法的) 생명론(生命論)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적 생명론이 취급하는 대상도 여려 생명체의 모든 것을 포함하게된다.
佛法에는 원시불교 이래,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진전(進展)등과
수많은 생명탐색의 업적이 내포되어 있다. 천태불교(天台佛敎), 日蓮대성인의 불교만을 보더라도
삼제론(三제論), 일념삼천론(一念三千論=십계<十界>, 십계호구<十界互具>, 십여시론<<十如是論>,
삼세간론<三世間論>), 색심불이론(色心不二論), 의정불이론(依正不二論), 번뇌론(煩惱論)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불법철리(佛法哲理)와 서양근대 이후의 과학, 철학과의 합치점을 구하여 상관성(相關性)을
통해서 지양(止揚) 융합(融合)하는 것은 극히 중요한 과제이면서 극히 곤란한 요청이기도 하다.
그런데 佛法과 다른 각도에서의 생명의 탐색을 함께 살리는 길을 개척하는 노력 없이,
과거의 생명론을 능가하는 생명관, 세계관의 수립은 거의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된다.
佛法의 기저(基底)에 자리잡은 동서의 생명론의 지양(止揚)-그것이 불법적 생명론의 과제이다.
불법적 생명론을 구축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서양과학, 철학과 불법,
양자가 서로 접근하는 것을 들 수가 있다. 특히 과학이 나타내는 성과가
일단 실증적(實證的) 효과를 가지고 있는 이상(그 성립기만 자체의 철학적인 논쟁은 있을지언정,
과학의 데이터를 무시한 생명론의 구축은 있을 수 없다) 佛法이 접근하는데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불법철리를 변형시키는 것은 아니다.
본래, 불법철리는 불법신자의 실천 속에서 태어난 것이며 체험의 발자취가 논리화(論理化)된 것이다.
佛法에 있어서는 항상 인간생명의 변형이 지향(志向)되고
변혁의 동적(動的)인 과정에서 많은 철리(哲理)가 태어난다.
하나의 철리가 한 사람의 체험에서 생기고 이론화 되면서 그 이론은
다시 다음 불법신자의 몸 속으로 받아들여진다.
불법철리는 불법신자라는 일개의 인간생명을 떠나서는
생명에 본래 갖추어진맥동성(脈動性)은 소실되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불법철리는 불법신자의 체내에서 성숙하고 심화(深化)되어간다.
인간생명은 불법철리의 영원한 모태(母胎)이며, 귀환(歸還)의 장소로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다.
앞서말한 「佛法이 접근한다」란, 많은 철리를 현대인의 생명에 귀환시키는 것을 뜻하고 있다.
佛法의 법칙과 서양과학, 철학과의 융합을 기하는데 있다.
단순한 법칙으로서 기술(記述)된 불법철리 자체를 현대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불법신자의 혈육화(血肉化)를 통해서 현대를 개척하는 원동력으로 소생시켜야 할 것이다.
佛法的 生命論 2
宇宙 생명과 人間생명의 관련성 중심
현대인의 행동의 힘으로서 소생한 佛法은 다시(生)의 숨결을 회복하고
인간적 생명 자체를 매개로 해서 다른 과학적, 철학적 생명론과의 접점(接點)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불법은 실천의 법이므로 그 법에 의해 인간생명이 내포하는 영역이 우주생명, 문화적 생명, 사회적 생명
으로 확대됨에 따라 불법적 생명론이 다른 생명론과 관계되는 영역도 점차적으로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불법적 생명론은 부처의 생명(우주생명)을 획득하고
무기적 생명의 세계인 대우주 자체와 접촉하는 것이다.
만약 이 과정을 주객(主客)의 관점에서 다시 논하면(主客不二), 일여(一如)의 차원에 불법철리(佛法哲理)를 숨쉬게 함으로써 주로 객관, 객체의 입장을 갖는 과학적 생명론 등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불법적 생명론의 범위, 생명이라는 말의 개략(槪略), 과학적·철학적 생명론과의 관계는
대체로 이상과 같으나, 현실적으로 많은 불법철리가 실천적 불법신자의 체내에서
훌륭하게 소생한 실례(實例)로서 과거에는 대승불교운동(大乘佛敎運動)의 기점이기도 했던
용수(龍樹), 불법사상의 장대한 체계화를 시도해서 성공한 천태(天台)를 들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천태가 세운 불법 철학체계는 철학으로서 최고봉이면서
그 체계(體系)에 맥동하는 피가 부족한 결함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영원한 생명관」의 體得이 佛法的 생명론의 정점에 우뚝
천태를 중핵(中核)으로 과거의 불법신자의 생명에 의해서 배양된 佛法의 혈맥을 방대한 철리와 함께
받아들여 우주생명 자체에까지 심화(深化)시킨 불법자(佛法者)로서 日蓮대성인을 생각할 수 있다.
즉 천태가 생애를 바친 불법이론(佛法理論)은 日蓮대성인의 불법자로서의 실천 속에서 소생했던 것이다.
불법적 생명론의 소재(素材)가 되는 불법철리는 천태의 일념삼천론으로서 이미 논한 바 있는데
日蓮대성인의 佛法에서는 이 철리(哲理)에 위치를 부여하고 종합해서,
종국적으로는 인간적 생명의 생(生)과 사(死)의 과제로 파고든다.
日蓮대성인의 佛法에 있어서의 「영원한 생명관」의 체득이 불법적 생명론의 정점에 우뚝 솟아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산맥의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생명의 구조와
다이너미즘과 변혁의 이론의 체득이 전제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불법적 생명론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는 전제가 되는 불법철리를 고찰(考察)하고자 한다.
첫째로 생명구조를 이해하는 기본으로써 색심불이론(色心不二論)과 구식론(九識論) 을 채용한다.
둘째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기본법칙의 하나인 번뇌즉보리(煩惱卽菩堤)의 메카니즘의 대략을
기술하기로 한다. 그리고 셋째로 佛法에 의한 변혁체험의 일부를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어느 경우도 日蓮대성인의 불법철리를 논술의 기점으로 정하고 거기서 전개할
과학적·철학적 생명론에 대한 관계는 다만 그 접점을 나타내는데 그치기로 한다.
또한 3개 각도의 고찰을 인간심리의 내오(內奧)에 대한 통찰을 기축으로 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의 분야와의 관계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의구조-色心不二와 九識論
우선 日蓮대성인의 저작(著作) 중에서 색법(色法)과 심법(心法)의 정의(定義)와
색심불이론의 기본적 사고(思考)를 추출(抽出)해 둔다.
색법에 관해서는 「십여시사(十如是事)」에「처음에 여시상이란 나의 몸의 색형(色形)에 나타난 상(相)
을 말하느니라」(어서410쪽)라고 있으며,「일념삼천이사(一念三千理事)」에는「여시상은 신(身)이니라. 현(玄)二에 가로되 상은 외(外)에 의하여 보고 분별(分別)함이라 문(文).
첨(籤)六에 가로되 상은 오직 색(色)에 있음」(어서 407쪽)라고 있다.
如是相은 인간적 생명에 있어서 色法 如是性은 인간적 생명에 있어서 心法
여시상이란 인간적 생명에 있어서 색법으로 생각된다.
심법(心法)에 관해서는「십여시사」에 여시성(如是性)이란 나의 심성(心性)을 말하느니라」
(어서410쪽) 라고 있으며「일념삼천이사」에는「여시성은 심(心)이니라. 현二에 가로되 성은 바로
내(內)에 의함, 자기를 고치지 않음 문. 첨六에 가로되 성은 오직 심에 있음」(어서 407쪽)이라고 있다.
여시성이란 인간적 생명에 있어서 심법을 가리키고 있다.
이 2개의 개념규정(槪念規定)에서 볼 때, 예를 들면 뇌세포의 작용(즉 뇌세포에 있어서 세포,
세포내 성분, 분자, 원자 등의 작용은 색법이며 그곳을 현현(顯現)의 장소로서 발동하는
마음의 작용, 즉 사고(思考), 기억(記憶), 충동(衝動)등은 심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의 작용은 물질구조의 법화로서의 색법으로 「즉(卽)하여」현재화(現在化)한다.
물질유동(物質流動)의 장(場)을 생명의 장으로 한다면 그 장에 있어서 색법과 심법은 통일된다.
「십여시사」에는「여시체(如是體)란 나의 이 신체(身體)이니라」(어서410쪽)라고 있으며
「일념삼천이사」에는「여시체는 신(身)과 (心)이니라. 현二에 가로되
주질(主質)을 이름하여 체(體)라함 문(文)」(어서407쪽)라고 있다.
색법이란 기본적으로는 색형(色形)으로 파악할 수 있는-시공현상(時空現象)으로 포착할 수 있다-
생명의 작용이며「겉에서 보고 분별」할 수 있다. 심법이란 생명의 심성(心性)이며
「내에 의함, 자기를 고치지 않음」이라는 특질을 갖는다.
이러한 색법과 심법이 신체(생명)에 있어서 통합적인 활동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신체활동을 색법의 측면에서 해명하면 생물학을 포함하는 과학적 생명론과의 접점이 생긴다.
九識論은 인간생명의 표층을 이루는 哲理이다.
심법(心法)의 측면에 있어서는 프로이트(1856~1939,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창시한 심층심리학(深層心理學)을 佛法에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佛法에 있어서는 심법의 측면을 독자의 수행을 통해서 통찰한 철리가 형성되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구식론(九識論)이다.
구식론은 인간생명의 표층을 이루는 오식(五識), 육식(六識)에서
심법의 영역을 깊이 탐색함으로써 떠오른 철리이다.
구식은 육식(의식), 칠식(말나식=末那識), 팔식(아뢰야식=阿賴耶識), 구식(근본정식=根本淨識)으로
명명(命名)되고 있으나 이 각식(識)을 색법으로서의 생명장(生命場)과의 상호관계-서로 「즉(卽)」
해서-에 있어서 위치를 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 경우 칠식 이하가 「개인적(個人的) 무의식(無意識)」에 상당하고,
팔식에서는 이미 「집합적(集合的) 무의식(無意識)」의 영역으로 들어간다고 생각된다.
즉, 인간생명으로서의 생명장이 직접 관여하는 것은 칠식 이하이며, 팔식은 개적인 생명장을
초월해서 인류적 생명, 무기적 생명에 있어서의 장(場)의 개념과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의구전(御義口傳)」에는 색법과 심법과의 통일된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또 귀(歸)란 우리들의 색법(色法)이고 명(命)이란 우리들의 심법(心法)이며
색심불이임을 일극(一極)이라고 하느니라」(어서 708쪽)라고.
색법, 심법의 특질은 전술한 바와 같으며, 색법은 「外에 의하면서」 시공적(時空的) 현상으로서
유동(流動)한다. 그 유전(流轉)은 끊임없는 우주생명(색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기적, 물질적 생명이다)
으로의 「환귀(還歸)」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이 「귀란 우리들의 색법이고」라는 뜻이다.
심법은 생명통일체에 있어서 「內에 의하면서」 우주생명(심법으로서의 무기적 생명은 그 내면에
팔식, 구식을 내포하고 있다)으로부터의 「발동(發動)」성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
그 발동의 장(場)이 바로 색법으로서의 생명장(生命場)이다.
이것이 「명이란 우리들의 식법이며」라는 의미이다.
더구나 색심의 이법(二法)은 각각 작용을 하면서 우주생명 자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주생명 자체가 색심통합체(色心統合體)이기 때문이다. 「어의구전」에는
「대지(大地)는 색법이고 허공(虛空)은 심법이므로 색심불이라고 이해할 것이며」(어서 742쪽)라고
기록되어 있다. 「색심불이임을 일극이라고 하느니라」란 개적 생명체의 색심(色心)이
공히 우주생명으로서의 「일극」에 뿌리내리고, 그 「일극」에로의 귀환과
거기에서의 발동을 이루고 있는 양상(樣相)을 뜻하는 말이다.
환언하면 우리들의 개적 생명체는 색법에 의해 구식(九識)으로 돌아가고 심법의 작용으로서
구식 이하의 심작용(心作用)을 엮어내는 웅대한 색심순환(色心循環)의 유동체로서 포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적 생명과 우주생명과의 관계를 이번에는 우주생명 자체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든 생명체는 宇宙생명에 뿌리내린 色心不二的 責任
인간적 생명은 가장 고차적(高次的)인 생명체이다.
이런 색심불이와 구식론을 우주생명으로부터의 생성(生成)이라는 각도에서 논해 본다.
무기적 생명으로서의 우주생명 자체가 색심불이의 통합체이며
팔식, 구식으로서의 발동성(發動性)에 근원을 두고 있다.
佛法에서 이 대우주 자체가 생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색법(色法)으로서의 무기물질의 심법(心法)에 개안(開眼)한 결과이다.
팔식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는 바와 같이 칠식 이하의
개적 생명체의 색심을 발동시키는 가능성을 전부 내포하고 있다.
물리(物理), 에네르기계(系)의 세계에서, 지구라는 혹성(惑星)에서는 각종 생물학적 생명이 탄생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세포(單細胞)와 그 전 단계의 생명체가 무생(無生)으로 보이는 무기적 생명에서 출현해 왔다. 이 사실은 팔식(八識)에서의 「세포식(細胞識)」(신식<身識>이라는 말은
佛法용어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신체의 식<識>이므로 일단은 다세포생물에 상응한다고 생각하면,
그 일단계 전에 단세포 생물에 상응하는 심법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으로서의 심법의 현재화(顯在化)를
가리키고 있다. 색법으로서의 세포체(細胞體)는 심법의 발동성을 나타내는 생명장(生命場)이다.
다음 단계에 들어서면 분열하고 증식한 세포군이 다세포계의 체제를 만든다.
이것은 제1단계에 의거하면서 거기에서 선식이 발동한다고 생각한다.
심법은 세포식을 내포하면서 그것을 보다 고차적인 체계하에 통합하고 있다.
다세포생물에 있어서 신식이 다른 4식(안, 이, 비, 설 등의 識)으로 다양화해 가는 것은 말할나위도 없다.
제3단계는 다세포계의 색심(色心)의 작용을 토대로 하여 그것을 편입(編入)하여
새로운 생명현상의 전개에 해당한다. 심법은 오식(五識)의 작용이다.
색법으로서의 생명장에서는 뇌간(腦幹), 「낡은 뇌(腦)」계통에 상당하는 형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4단계에 육식(六識=의식)의 발동단계로 들어간다. 즉 색법으로서는 하드웨어의 형식이다.
제5의 단계에 이르러 칠식(말나식)의 발동이 현재화(顯在化)하고 그와 함께 소프트웨어가 형성된다.
최종 단계에 인간적 생명의 색심의 작용이 차지할 위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단계에 있어서의 생명체는 전부 우주생명에 뿌리내린 색심불이적인 실재(實在)인데,
그 색법과 심법의 내용은 무한한 다양성을 엮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각종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색심의 작용의 「환귀(還歸)」와 「발동(發動)」을 뜻하는 점에 있어서는 일관하고 있다.
우주생명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색심의 작용이
생명현상의 단계에 따라서 다양한 생명순환의 모습을 창출하고 있다.
하나의 인간생명은 그 속에서 발동하는 오식, 육식, 칠식, 팔식, 구식이라는
심법을 근원으로 하는 웅대한 생명순환을 내포하면서도, 동시에 생명의 관점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생명현상의 각 단계를 시간적으로 전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그 생명장(生命場)에 우주차원의 시공(時空)이 집약되었다고 하겠다.
() | 화광신문 : 93/02/11 56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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