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3. 21:28ㆍ佛法 .SGI
[일본 SGI회원의 경이로운 체험담]
저는 교오또의 유전회사를 경영하는 가정의 6형제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종교는 진언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46세때 저를 임신하였는데 고령으로 6개월만에 조산하였습니다.
그때의 저의 모습은 머리털이 하나도 없고, 손톱도 안 나오고 몸은 또 내장하수로 '폐, 심장, 위'가 하복부에 뭉쳐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좌반신은 마비되어 괴물같은 모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소아마비였다고 합니다. 또 치아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개도 나지 않았습니다. 유복하고 무엇하나 부자유스러운 것이 없는 가정에 태어났으나 우리 집안은 저 한사람으로 인해서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주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경도대학병원부터 시작하여 병원이라면 가리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용하다고만 한다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신앙이 좋다고 하는 것은 다해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은 다해보았습니다.
시꼬꾸에 아주 유명한 박사가 있다고 하여 최후의 희망을 걸고 마써야마에병원 가까이 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하고 입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몸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현대의 의학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군요." 하며 최후에는 손을 떼어 버립니다. 비싼 치료비만 지불하고 힘없이 돌아 오곤 했습니다. 제가 16세때가 되던해 5월에 어머니가 이틀간의 예정으로 간사이에 볼일이 있어 갔었습니다. 모르는 집앞을 지나는데 그때 '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소리에 이끌리다시피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절복 좌담회였나 봅니다.
"그런 좋은 신심이 있다면, 저도 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그 자리에서 입신을 하였습니다. 소화 31년 5월 21일입니다. 그리고 필사적인 제목을 봉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정신이상이 되어 미쳐 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종교에는 '정법'과 '사법' 이 있다고 가르쳐 주시며 저를 강제적으로 입신시켰습니다.
16살인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본존님앞에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에는 안 보이나 철로된 벽 같은 것이 있어서 억지로 무리해 앉아 있으면 기절을 해 버립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찬물을 끼얹고 얼굴을 마구 때리고 하여 정신을 차리게 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원원겁부터의 여러 가지 방법을 한 결과였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는 본존님앞에 흙단으로 짠 책상을 놓고 거기에다 저의 몸을 붙들어 잡아 놓고 앉혀 놨습니다. 식사때와 자는 시간 이외에는 거기에 앉혀놓고 근행°창제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한 결과 차차로 근행 창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저를 건강하게 해 주려고 매일매일 날마다 절복을 하러 나갔습니다. 16세대의 절복이 되었을 때 마비되어 차가웠던 왼쪽다리가, 또 17㎝나 짧았던 왼발이 오른쪽다리와 똑같은 길이로 길게 늘어 났습니다. 그것도 몇 달이 걸려서 길어진 것이 아니고 일주일 동안에 길 게 늘어났습니다. 밤중에 축인시 근행이 끝나면 뼈가 소리를 내면서 길어진 것입니다. 저는 기쁘다기 보다도 오히려 어본존님의 위대한 불력법력에 위력의 두려움이 더 강하게 머리에 꽉 박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32년 17세때 다리가 나아서 걷게 되었으므로 어머니와 같이 동행하여 절복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내장하수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던 몸이라 걸을 때마다 내장이 내려와서 그 괴로움이라는 것은 도저히 말로는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비틀 비틀하는 저를 택시에 태워서 절복을 다녔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가발을 쓰고 틀니를 하고 있었지만 절복을 나갈 때는 가발도 벗기고 틀니도 빼고 내 생긴 모양 그대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비웃고 아이들은 기분 나쁘다며 놀리면서 돌을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18살의 나이로서 창피하고 부끄러워 그 괴롭고 쓰린 체험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서 절복을 하는데 심장협심증으로 호흡곤란이 왔습니다. 그 집에서 "우리집에서 죽으면 곤란하니, 빨리 데리고 가시오!"하면서 병원으로 싣고 갔습니다.
어떤 집은 "저 애가 건강해지면 나도 신심하지요!"하며 찬물을 끼얹는 적도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4개의 격언(염불무간, 선천마, 율국적, 진언망국)을 당당하게 말하는 어머니의 늠름한 모습에 본존님의 위대함을 다시 깨달으며 신심하게 되었습니다. 1년후 제가 19세가 되던 34년 어머니와 같이 개인 절복 158세대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대 공덕을 받았습니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는데 봄에 새싹이 돋아 나듯이 머리카락이 나왔습니다. 또 핑크색의 조그마한 손톱도 나왔습니다.
개목초의 1절 『나의 제자 재난이 일을지라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느니라. 천의 가호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현세의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지어다』 라는 금언을 마음에 되새기며, 괴로울 때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킨적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35년 5월 3일 어머니가 장암에 걸렸습니다.
어머니 수술후 10월에 언니가 위암에 걸렸습니다. 36년 제가 21세때 위암에 걸려 셋이 똑같이 암에 걸렸습니다. 암이라는 병은 초기, 1기, 2기, 3기가 있는데 언니는 조기 발견이 되어 초기여서 수술을 하지 않고 저는 1기여서 다른데 까지 전의되지 않도록 위의 절제수술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방법의 죄의 무서움과 숙업의 깊음과 권속묘의 불가사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목을 올리면서 웃는 얼굴로 병원안을 돌아다니시면서 열심히 절복을 하였습니다. 또, 언니의 창제에 창제를 거듭하는 모습에 나도 용기가 솟아나서 생명의 오저로부터 본존님께 감사가 우러났습니다. 저는 수술 후 29일만에 좀 무리라고 했으나 퇴원을 해서 어머니와 같이 1개월간 지방 절복전에 참가했습니다.
오리가 넘는 십리 가까운 고개 언덕길을 넘어갈 때는 피를 토하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배가 아파서 밤을 꼬박 세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숙명 전환하고 말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용기가 나오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하고 식사도 달라서 어머니는 식사때 마다 본존님께 공양올린 후에야 저를 먹게 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이를 악물고 1개월간의 절복참전을 끝내고 귀가했습니다. 언니는 시집식구들이 가족전원 신심을 반대하였지만, 생명을 걸고 본존님을 믿고 신행학에 면려했습니다.
37년 언니가 먼저 암이 완쾌되고 그 다음에 어머니가 완쾌하고 그 다음에 제가 완쾌하였습니다.
그때 위암만이 완쾌한 것이 아니고 몇 해를 두고 오랫동안 고생했던 '내장하수, 신장병, 간장병, 심장협심증'도 다 한꺼번에 완쾌됐습니다. 세 모녀가 숙업전환을 한 것입니다. 입신한지 5년이 될 때 21살에 또 다시 어본존님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금언을 되새기며 세 모녀가 감사의 제목을 한없이 올렸습니다.
저희들을 위하여 동지 여러분들이 하루에 한 시간씩 제목을 보내 주셨습니다. 동지의 감사함과 선배님의 지도 덕분으로 도중에 좌절하지 않고, 잘 신심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42년 현재의 남편을 절복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모 형제는 "이제 겨우 본존님의 공덕으로 건강하게 된 몸인데" 하며 결혼에 반대했지만, 그것을 물리치고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제일 기쁘게 지내야 할 신혼 시절에 신앙 활동에만 하루를 보낸다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산부인과 진찰을 받았더니 의사의 말이 현재의 저의 건강 상태로는 무리하다며 그냥 두면 모자가 둘 다 자살 행위라고 낙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아이를 참 좋아했습니다. 산부인과를 7군데나 가 보았으나 의사의 말은 하나같이 모두 낙태하라고 했습니다.
오는 길에 남편은 너무 슬퍼서 길바닥에 주저 앉아 버리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이 바로 남편에게 실증을 보일 때구나"하고 다음의 결의를 하고 성교신문 배달과 하루에 1만번 제목과 1달에 1세대절복을 해 냈습니다. 임신 9개월만에 신문배달하던 도중 웅덩이에 빠져서 허리를 몹시 아프게 찧었습니다.
그리고 40분후 출산을 해서 맏딸을 낳았습니다. 의사의 말이 "1주일이나 열흘만 늦었더라도 자궁이 파열되어 모녀의 생명을 구할 수 없을 뻔했다."고 하더랍니다.
저는 본존님이 미래의 대붕을 주신데 감사하고 남편은 어린애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습니다. 그후 남편은 반장의 임명을 받았습니다.
50년 8월 그 전날까지 원기 왕성하게 학회활동을 하시던 어머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오지 않아 , 방에 가보니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진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승려도 보고 감탄했습니다. 사상이 너무 아름다워 그것을 보고 "나도 죽은 모습이 저런 사상이 된다면 신심하겠다."고 하여 남녀가 21명이 그 자리에서 입신을 하였습니다.
죽은 후에도 절복 실천을 하는 어머님에게 나도 동지들도 존경함과 동시에 신앙의 위대함을 재삼 배웠습니다. 53년 남편의 몸이 너무 말라서 건강 진단을 받아보니 위와 십이지장 입구의 암이라고 했습니다. 약 1년간의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악성이면 반년밖에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체험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고 '살아서 제목을 부르는 한 금생에 숙업이 나오는 것은 숙명전환 할 수 있다.' 는 대확신으로 둘이서 창제에 창제를 거듭하여 힘이 있는 한 절복에 뛰어다녔습니다.
54년 4월, 4개월 후 병원에 재진을 받으러 갔더니 진단 결과 위에도 십이지장에도 암의 흔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재삼 본존님의 공덕을 생명 오저로부터 감사하며 생명이 있는 한 광선유포에 사명을 완수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도중에 좌절하지 않고 신심을 관철하게 된 것은 동지 여러분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한 어머니와 남편에게도 감사합니다.
어린 아이는 지금 중학 1년생이 되어 명랑하고 소박하게 중등부원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본존님께서 주신 이 목숨을 일가화락의 신심으로 어떠한 고난이 있을 지라도 정면으로 대결하여 지역활동에 광선유포에 절복홍교에 매진할 것을 맹세합니다.
감사합니다.
[ 간사-가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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