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30. 20:41ㆍ佛法 .SGI
생사의 고뇌를 바꾸기 위해
여기서는 생사의 고뇌를 타고 넘어 영원히 이어지는 행복 경애를 열기 위해 금세에서 ‘마음의 재보’를 쌓는 불도수행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오키나와 청년부 대표 연수 스피치에서 (1988년 2월 19일, 오키나와)
이러한 불교설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석존 곁에, 먼 곳에서 찾아온 바라문(婆羅門) 장로(長老)의 수행자 일곱 명이 있었습니다. 그 수행자들은 방 한 칸에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처럼 석존 곁으로 불도를 구하러 왔으면서 날마다 방에 모여 잡담을 늘어놓고 흥겹게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석존은 수행자 일곱 명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오사(五事)를 바라며 그것이 충족되면 스스로 만족한다. 오사란 첫째 젊기를 바라고, 둘째 용모가 단정하기를 바라고, 셋째 힘이 충분하기를 바라고, 넷째 재산이 풍족하기를 바라고, 다섯째 사회적인 신분이 높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의지할 만한 것인가. 그대들은 날마다 하찮은 잡담을 하면서 웃고 지내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렇게 편히 사는가.”
그리고 석존은 다시 한번 인생은 무상신속(無常迅速)하며 인생에는 생로병사라는 ‘사고(四苦)’가 있다고 설해 가르쳤습니다. 그것을 듣고 수행자 일곱 명은 비로소 자신들이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마음을 고쳐 먹어 수행에 힘썼다고 합니다.(법구비유경)
“그대들은 무엇을 믿고 사는가.” 이것이 석존의 물음이었습니다.
이 인생은 무엇을 양식으로 삼으며 살아야 하는가.
니치렌대성인은 ‘곳간의 재보’ ‘몸의 재보’ ‘마음의 재보’라는 세 가지 ‘인생의 재보’를 제시하셨습니다.(어서 1173쪽)
이 설화 속의 ‘오사’란 이른바 ‘곳간의 재보’와 ‘몸의 재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산은 말할 나위도 없이 ‘곳간의 재보’입니다.
젊음, 외모, 건강이나 능력 같은 힘, 지위나 신분 그리고 명성은 ‘몸의 재보’입니다.
모두 인생과 생활상의 가치이며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것들이 과연 인생의 진실한 ‘보배’이자 영원한 ‘양식’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재산이 있기 때문에 위협을 당하거나 살해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질투를 받거나 함정에 빠지는 여성도 많습니다.
명성과 힘을 믿고 교만에 빠져 인생을 그르치는 사람, 지위가 높기 때문에 권력의 마성에 마음이 잠식된 사람들도 우리는 자주 봅니다.
이중에 영원히 계속되는 ‘보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곳간의 재보’와‘몸의 재보’는 결코 진실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인생의 양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적어도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하는가. 대성인은 “마음의 재(財)가 제일이로다.”(어서 1173쪽) 하고 명쾌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이 ‘마음의 재보’는 ‘신심’입니다.
신심이 바로 인생의 영원한 ‘보배’이자 ‘양식’입니다.
‘신심’에는 무량한 공덕과 무변한 복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토마저 변혁하는 우주대의 역용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환희와 절대적 지혜 그리고 자비의 원천이며 ‘곳간의 재보’와 ‘몸의 재보’도 모두 영원한 행복으로 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 최고의 ‘인생의 양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그 무한한 힘을 어떻게 끌어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은 빠릅니다.
망설이거나 푸념하거나 남을 비판하면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또 자신의 게으름에 지는 동안, 청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맙니다.
소중한 하루하루입니다.
여러분은 현실 사회에서 씩씩하게 살면서 아울러 ‘대우주’를 우러러보며 ‘영원’ 을 생각하는 드넓은 경애로 하루가 천년에도 천겁(千劫)에도 통하는 충실한 청춘과 인생을 보내기 바랍니다.
“병에 의해서 도심(道心)은 일어납니다.”
성훈에 비추어 불법은 병마저 성불하는 계기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가르칩니다.
와카야마현기념총회 스피치에서 (1988년 3월 24일)
큰 병을 앓은 사람은 인생의 깊은 맛을 안다고 합니다.
불법에서는 ‘병’도 궁극의 목적인 ‘성불’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고통스러운 병이라는 불행이 그대로 영원에 걸쳐 절대적 행복으로 가는 발판이 됩니다.
어서에 “이 병은 부처의 계책(計策)이신가. 그 까닭은 정명경(淨名經), 열반경(涅槃經)에는 병이 있는 사람은 부처가 된다는 뜻이 설해져 있소이다. 병에 의해서 도심(道心)은 일어납니다.”(어서 1480쪽)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남편이 병에 걸린 부인에게 “이 병은 부처의 계책일까요.
왜냐하면 정명경과 열반경에는 ‘병이 있는 사람은 부처가 된다.’고 설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병에 의해 불도를 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하고 따뜻하게 격려하셨습니다.
자재(自在)롭고 커다란 대성인의 지혜와 자애가 가슴에 다가오는 지도입니다.
확실히 보통 때는 어쨌든 병으로 괴로우면 누구나 열심히 제목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또 그러한 고난의 때야말로 더욱더 신심의 불꽃을 태워야 합니다.
병을 불행으로 가는 출발점으로 하는가, 더 큰 행복의 궤도로 가는 시작으로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제목의 힘은 병을 극복하는 강한 생명력을 가져올 뿐 아니라 생명 깊은 곳에 있는 숙업도 전환합니다.
생명의 ‘아(我)’를 불계로 상승시켜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 행복 경애로, 무량한 복덕을 열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병이라는 마이너스를 본디 건강체라는 제로에 되돌릴 뿐 아니라 더 큰 플러스의 방향으로, 행복의 방향으로, 멋지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역용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고난도 용감하게 비약하는 계기로 삼는 ‘불굴의 신심’입니
다.
‘신심을 하면 어떠한 병도 바로 치유되는가.’ 하나같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숙명적인 문제도 있고 신심의 강약도 있습니다.
또 범지(凡智)로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깊은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심만 강성하면 반드시 건강한 방향으로, 행복한 방향으로, 성불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삼세(三世)의 생명에서 보면 우리 생명은 가장 좋은 방향으로 가장 행복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숨이 있는 한 묘법을 부르고 또 불러 ‘광선유포를 위해, 광선유포를 위해’ 라는 정열적인 일념을 환하게 계속 불태웠으면 합니다.
그 단련된 강하고 강한 신심의 ‘마음’이 바로 ‘생사’의 괴로움도 유연히 타고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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