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0. 20:55ㆍ佛法 .SGI
『남에게 식(食)을 베풂에 삼(三)의 공덕이 있으니 일(一)에는 명(命)을 잇고, 이(二)에는 색(色)을 더하고, 삼(三)에는 힘을 준다.』
본초는 1276년 윤3월 5일 니치렌 대성인께서 성수 55세의 때에 미노부에서 쓰시어 묘미쓰상인에게 주신 어서로 법화경공덕초라고 불립니다.
금일의 어금언을 먼저 설하시고, 이후에 불법전래의 역사를 논술하시고 말법에 유포해야 할 불법은 대성인의 삼대비법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금일은 법화경 행자를 돕는 공덕과 공양에 그 포인트를 두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존귀한 묘법이 모든 사람에게 현현(顯現)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한 불법은 본원적인 생명 존엄을 설한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께서는 본초의 첫 머리에서 목숨이 최고의 재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기나 등에(곤충)라도 모두 생명을 소중히 한다.
무엇보다 부처가 중생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자애(慈愛)한다.
그러므로 오계(五戒)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계율은 가장 먼저 불살생계를 설해 생명을 지탱하기 위한 식(食)을 베풂을 중시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초에서 이렇게 설한 이유는 묘미쓰 상인이 주신 공양이 법화경 행자의 생명을 지키고 지탱하게 하기에 그 공덕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찬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남에게 음식을 베푸는 일에는 명을 잇고 색을 더하고 힘을 주는 세 가지 효용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음식을 베풀면 생명이 유지되고 생기가 넘치며 꿋꿋이 사는 힘이 넘쳐흐릅니다.
그리고 음식을 베푼 사람은 인계와 천계에 태어나도 또 부처가 되어도 훌륭한 과보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인계와 천계에 태어났을 때의 과보를 보면, 생명을 잇는 공덕을 주었기에 베푼 사람은 장수(長壽)하는 과보를 얻습니다.
힘을 주는 공덕을 주었기에 위엄과 인덕이 갖춰져 많은 사람에게서 신망을 받습니다.
색을 더하는 공덕을 주었기에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구족해 꽃처럼 단정한 풍모를 갖춘다고 씌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부처로 되었을 때의 과보는 부처의 삼신(三身)으로 줄여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생명을 잇는 공덕은 허공처럼 광대무변한 법신여래로 나타납니다.
힘을 주는 공덕은 청정한 지혜의 빛으로 충만한 보신여래로 나타납니다.
색을 더하는 공덕을 석가불과 같은 자비에 넘친 응신여래로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이 생명을 지키고 자애하는 행동이 불도수행의 근간이기에 음식을 베푸는 공덕은 인계와 천계에 태어나도 큰 복덕이 되고 더욱이 성불해서 삼신즉일신(三身卽一身)의 완전한 불신(佛身)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공양에는 사람에게 선(善)을 성취하게 하는 공덕이 있습니다.
그 궁극은 최고의 선인 성불을 성취하게 하는 공덕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공양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소승에서는 성인(聖人)에게 공양하면 인계와 천계에 태어난다고 설합니다.
그에 비해서 성불의 가르침인 법화경에 공양하면 삼신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불의 근본법을 설해 넓히는 법화경 행자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모릅니다.
다카하시전답서 1467에,
『법화경 행자를 부양(扶養)함은 자비 중의 대자비의 미곡(米穀)이 되리라.
일체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라고 설하여져 있습니다.
법화경 행자를 부양하는 쌀은 자비 중의 대자비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가르치십니다.
일체중생을 구제하려고 투쟁하는 법화경 행자의 생명을 도와 그를 실천하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양한 쌀은 『일체중생을 이익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란 만인성불이라는 부처의 서원 그대로 불석신명(不惜身命)으로 묘법유포를 실천하는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법화경 행자를 지키는 것은 민중구제를 실현하는 존귀한 광선유포의 위업을 떠받치는 일이 되기에 큰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불법의 설화에는 공양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4가지의 설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덕승동자 이야기로, 덕승동자는 고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육대왕을 가리키며, 석존이 왕사성 안에서 걸식행을 하고 있을 때 길가에서 덕승 동자, 무승 동자라는 두 아이가 모래로 장난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광명에 빛나는 석존의 존귀한 모습을 보고 환희한 덕승 동자는 모래로 만든 떡을 바쳤습니다. 미소를 띠우면서 그것을 받은 석존은 석존의 멸도 백 년 후에 이 아이는 인도를 통치하는 전륜왕이 되어, 정법으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나의 사리를 널리 유포하며 8만4천의 탑을 만들고 무량의 중생을 안락하게 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그 말대로 전 인도를 통일한 큰 나라의 왕이 된 그는 세상을 다스리는 기본에 불교의 자비 정신을 두고, 갖가지 사회사업을 일으켜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으며, 그에 의해 제3회 불전결집이 행해졌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빈녀의 일등 이야기가 있습니다.
석가가 영추산에 있을 때 어떤 임금이 석가에게 등불을 공양하기로 하여 불을 켜는 기름을 잔뜩 실은 수레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를 본 가난한 할머니 한 분이 석가 부처님을 존경했으나 너무나 가난했으므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기름을 사 부처에게 공양했습니다.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양한 등불로 가득했으나 가난한 할머니는 작은 등불 하나만을 공양했습니다.
한밤중이 되자 바람이 세게 불어 임금이 공양한 불은 차차 꺼져 갔지만 단 하나, 할머니의 등불만이 보석처럼 찬란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부처는 제자들에게, “저 할머니는 아름다운 진심을 가지고 있다. 다시 태어날 때에는 임금보다도 휠씬 행복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목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련은 석존의 제자 중 특히 뛰어난 10명의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목련의 어머니는 아주 욕심쟁이여서 아무리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아도 언제나 자기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도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걱정하던 목련은 신통력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배는 너무 커져서 터질 것 같고 목은 실처럼 가늘며 입은 마치 바늘구멍처럼 가늘어져 있었고 손과 발도 바싹 여윈 괴롭고 불쌍한 모습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욕심만 부렸던 어머니는 죽어서 아귀라는 괴로움의 세계에 떨어져 슬퍼하며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를 구하고 싶은 진심에서 목련은 석존에게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괴로움에서 구할 수 있는지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석존은 “여름 수행이 끝나는 날에 많은 제자들이 모이니까 그 때 모든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공양을 하고 기원을 부탁하여라. 그렇게 하면 어머니를 괴로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목련은 이 가르침대로 공양을 하여 아귀의 괴로움에서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달장자 이야기입니다.
먼 옛날 천축의 사위국에 수달이라고 하는 장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일곱 번 부귀하게 되고 일곱 번 빈궁하게 되는데, 마지막 일곱 번째 가난할 때 3일이나 굶고 있었는데 창고에는 쌀이 5되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 5되를 해공(解空) 제일의 수보리에게, 또 신통 제일의 목련에게, 다문 제일의 아난에게 마지막은 석존에게 모두 공양한 결과, 370개의 모든 창고에 재보가 가득차서 오랫동안 장자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쳐 염부제 안에서 견줄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불전의 설화가 이러한데 진실된 법화경 행자에게 공양하는 공덕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을 것입니다.
말법에 광포에 힘쓰는 공덕에 대하여 제법실상초 1359에,
『니치렌을 공양하고 또 니치렌의 제자단나가 되심은 그 공덕을 부처의 지혜로서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라고 하시며 말법에 대성인을 존경하고 공양드리며 문하로서 광포에 힘쓰는 그 공덕은 부처의 광대(廣大)한 지혜로도 헤아릴 수 없다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기 쉬우므로 자칫하면 올바른 실천을 게을리 하기 쉽습니다.
니이케어서 440에서,
『어쩌다가 인간으로 태어날 때에는 명문명리(名聞名利)의 바람은 심하여 불도수행의 등불은 꺼지기 쉽도다.
무익(無益)한 일에는 재보(財寶)를 다 써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불법승에게 약간의 공양을 하는 데에는 이를 귀찮게 생각하니 예삿일이 아니로다.
지옥의 사자(使者)가 분발하는 것이니 촌선척마(寸善尺魔)란 이것이니라.』
범부는 세간의 풍조에 끌려 자칫 낭비를 하기 쉬워서 공양할 마음이 생기지 않기 쉽다고 지적하시고, 그것은 지옥의 사자가 다투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교시하시고 계십니다.
마쓰노전답서 1386에,
『후세(後世)를 원한다면 저 설산동자와 같이 함이 바람직합니다.
참으로 자신이 가난하여 보시할 보물이 없으면, 자기 신명을 버려서 불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신명을 버려서 불법을 배울지어다.』 라고 설하셨습니다.
설산동자는 반게를 듣기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지금 법화경의 일경을 들을 수 있는 나는 무엇을 가지고 그 은덕에 보답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이실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에게 비춰 말한다면, 신앙을 권유 받아 본존을 배견할 수 있었으며,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철리를 배우고 공덕을 받아 숙명전환의 법을 알게 된 이 은덕에 무엇으로 보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신명을 바치는 것은 광선유포의 대사상에 매진하는 것이며, 신명을 버리고 불법을 배우는 것이란 실천 속에서 몸으로 불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업에도 인생에도 굴곡이 있기 마련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제일가는 대부호인 수달 장자 부부의 인생행로도 결코 순풍에 돛을 단 것과 같은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일곱 번이나 가난을 맛보고 또 일곱 번 큰 부자가 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습니다.
특히 일곱 번 째 가난에 처했을 때는 모두 다 도망치고 단지 부부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그런 구렁텅이 속에 있으면서도 스승으로 우러러보는 석존에게 성심성의를 다하고 대법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치려고 했습니다.
가장 괴로울 때, 가장 강하고 깊은 신심으로 공양을 한 덕분에 수달장자 부부는 상황이 바뀌어 인도에서 제일가는 큰 부자가 됐고, 머지않아 저 유명한 기원정사를 짓는 대경애로 되었습니다.
일념삼천이자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이며, 신심의 마음이야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깊이 사색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께서도 우에노전답서 1574에서,
『이 수달장자를 거울로 삼아 만사를 터득하시오.』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확실히 사람은 일상적인 일에는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지기 쉽습니다.
주위 사람이 보내는 성의와 진심 어린 행동도, 어느덧 그렇게 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착각하고 감사의 마음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범부의 습성입니다.
어려울 때 자신을 지켜준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는 것이 공양의 첫출발이 아닐지 조심스럽게 저의 의견을 피력해 봅니다.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는 인간성과 사람다운 행동에 불법의 진수가 있지 않을런지요.
그럼 우리는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공양해야 할까요.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곧은 마음’ ‘청정한 마음’이 있으면 모두 공덕으로 바뀌어 간다.
모두 마음으로 결정된다. 재력이 있는 사람이 많은 공양을 해도 반드시 신심이 두텁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또 가난한 사람이 조금밖에 공양할 수 없다고 해도 그것으로 신심이 약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소중한 것은 마음, 신심의 발로에서 나온 공양인 것인가이다.
공양이 적고 많음에 상관없이 모두 그 사람의 마음이 나타나기 때문에 소중히 해야 한다
애써서 공양을 하더라도, 환희도 없이 덩달아 그저 참여하는 것과
용약환희하며 참여하는 것은 공덕에도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공양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제일이면 그 공덕도 제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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