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과 실증/인간혁명/청년과 희망

2015. 5. 8. 11:20정보방

 

 



 

신입회원 교학영상물 2편

“인간혁명”

안녕하세요?
신입회원을 위한 교학,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1편에선 기원과 실증에 대해 알려드렸는데요.
니치렌 불법에서 기원을 하는 근본 목적은 일생성불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일생성불을 좀더 쉬운 현대어로 하면 아마 ‘인간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전세계 SGI회원이라면 누구나 인간혁명에 도전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SGI에서 말하는 ‘인간혁명’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혁명’이란 영어로 레볼루션(Revolution),
‘뒤집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급격한 변화를 말하는데요.

 
지금까지 정치혁명, 경제혁명, 산업혁명 등 다양한 혁명들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죠.   
 
그러나 무엇을 바꾸어도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있는 ‘인간’ 그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세상도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혁명이  가장 근본적인 혁명이고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혁명이지 않을까요.  
 
인간혁명 역시 나의 성향이나 습성들을 선의 방향으로 바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도다 조세이 창가학회 2대 회장은 인간혁명에 대해 ‘자신의 생명 변혁을 통해 생활과 인생을 행복하게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알려주셨는데요.  
 
물론 사람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순 없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조금 더 빨리 나를 바꾸어가는 거죠.
 
이케다 SGI은 ‘한없이 향상해 간다.
무엇인가 특별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더욱 좋은 자신을 향하여 향상해 간다. 그런 모습이 인간혁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간혁명’이라고 해도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제까지 늦잠 자던 사람이 오늘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인간혁명입니다.
또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만 알던 사람이 주변의 이웃이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행동 한다면 이 역시도 그 사람의 인간혁명입니다.
 
말하자면 평범함에서 눈을 떠, 보다 높고 보다 깊고 보다 넓은 쪽으로 노력하고 헌신하는 행동을 인간혁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선 ‘한 걸음’이 중요합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가,
멈춰 선 채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으로 인생은 결정됩니다.

너무 괴로워서 어쩔 수 없을 때 또 앞이 꽉 막혔을 때가 크게 인간혁명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때 물러서지 않고 눈 앞의 과제에 도전한다면, 어떠한 일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한 나로 단련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SGI는 추상론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인간혁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바로 내 안에서,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혁명에 대해 이제 좀 이해가 되셨나요?
물론 혁명이라고 해서 한번에 짠 하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의하고 결의했지만 금세 마음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또 결의하면 됩니다.
‘이번에는’ ‘이번만은’ 하며 발버둥치면서 전진하는 사람이 반드시 ‘인간혁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금방 무너지는 마음을 잡아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신앙, 바로 SGI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혁명은 어떤 원리로 되는 걸까요.  
 
인간혁명은 근본적으로 나와 부처의 생명이 일체가 되는 가운데 가능합니다.
즉 ‘남묘호렌게쿄’ 창제행으로 내 안에 부처의 생명을 끌어내  ‘나를 바꾸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좀더 쉽게 알아볼까요.
미국의 유명한 불교학자인 하버드대학교의 찰리 헤리시 박사는 ‘인간혁명’ 사상을 ‘곶감’을 예로 들어 강의하고 있습니다.
곶감이 되기 전 감은 너무 떫어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햇볕에 말리면 맛있는 곶감이 됩니다.   
그 곶감의 단맛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감 속에 있던 떫은 맛이 익어 변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도 처음엔 떫은 감처럼 가치없어 보일지라도 ‘태양의 빛’을 비춰 내 안의 부처의 생명을 끌어내 성숙시키면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면 그 ‘태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본존’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떫은 감’을 나무에서 따 햇볕에 말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떫은 감’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작업을 해 주는 존재가 바로 ‘스승’인 것입니다.
 
헬렌 켈러가 설리반 선생을 만나 자신의 가능성을 열었듯,
또 고흐가 밀레를 스스로 스승으로 삼아 화가의 길을 걸었듯
인생의 스승은 인간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SGI에선 이케다 회장을 인생의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는데요.  
이케다 SGI회장은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마침내 한 나라의 숙명을 전환시키고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전환까지도 가능케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고난이건, 사회 인류적인 문제이건 그 근원적인 해결의 길은 ‘한 사람의 근본적인 변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인식하고 눈 앞에 놓인 과제에 도전하며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혁명은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 힘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끄집어내는 희망의 철학이 바로 SGI의 인간혁명입니다.

 
세상의 현실은 냉엄합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실제는 불행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득이 인간혁명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행복을 여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나를 바꾸는 힘은 이미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끌어내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SGI와 함께 인간혁명에 도전하면서 한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행복과 희망의 방향으로 이끌어보시길 바립니다
 



() | : 12/05/01 호



신입회원 교학강좌 1편

“기원과 실증”
 
신입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국SGI 회원이 되신 걸 축하 드립니다.
SGI 회원이 되고 나니 이것 저것 궁금한 것들이 많으실텐데요.
니치렌 불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기원과 실증인데요.
보통 기원이라고 하면, 괴로울 때나 힘들 때 신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뭔가에 매달리거나 기적을 바라는 것이라는 오해가 많지 않나요?
니치렌 불법에서 말하는 기원은 이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다를까요?
 
1 . 기원
우리들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
‘보다 멋지게 살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바라며 행동합니다.
그런 ‘바람’에 대한 해답이 바로 종교일 텐데요.
 
종교의 역할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인 토인비 박사는 이케다 SGI 회장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인생에 대한 태도’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인생에 대한 태도를 니치렌 대성인 불법은 어떻게 제시하고 있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일생성불’입니다. 성불이라고 해서 금빛 찬란한 부처가 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본래 자신이 갖고 있는 부처의 생명을 열어 어느 것에도 지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기원의 목적은 이 일생성불에 있습니다.
즉, 제목을 부르며, 매 순간 내 안에 부처의 생명을 나타내는 일이 우리가 기원을 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기원이란 절대적인 신에게 바라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근원의 법’을 끄집어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이 ‘근원의 법’에 ‘남묘호렌게쿄’라고 이름을 붙였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기원하는 것만이 내면에 있는 부처의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실천입니다.
 
이러한 기원의 힘에 대해서 니치렌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서의 한 구절을 볼까요.  
 
“대지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을 동여매는 자는 있을지라도 조수의 간만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 행자의 기원이 성취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어서 1352쪽)
 
대성인은 어서에서 “법화경 행자의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여기서 법화경 행자란 묘법을 믿으며 넓히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즉, 우리의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대성인의 확신에 찬 선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날마다 어본존을 향해 기원하는 것은 불도수행의 근본이며 현실생활 속에서 모든 것에 승리하기 위한
원천인 것입니다.
 
MC  일생성불이란 더 쉬운 말로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원은 그 행복을 만드는 가장 빠르고 올바른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법화경 행자의 기원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해서 설마 복권 당첨 같은 일확천금을 기원하는 분은 없겠죠?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기원은 나의 마음을 선의 방향으로 바꿔가는 것이며, 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전하도록 해주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원의 힘을 알고 싶다면 직접 체험해보는 수밖에 없겠죠.
이루고 싶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서 진지하게 기원하며, 생활 속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는 반드시 나올 테니까요.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냐구요? 바로 이렇습니다.

2. 실증  
인간은 본래 ‘부처의 생명’을 지니고 있지만 그 생명의 작용을 방해하고 불법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무명’이라는 생명도 갖고 있습니다.
 
이 무명의 생명은 자신의 현실을 한탄하고 불평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냅니다.
이처럼 불행의 원인이 되는 무명을 없애고 부처의 생명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건 남묘호렌게쿄 창제행밖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처의 생명은 현실에서 어떤 힘으로 나타날까요? 바로 고난이 닥쳐도 ‘유유히 인내하는 힘’이나 ‘혼자 일어서는 용기’ 그리고 ‘역경을 올바르게 이겨나가는 지혜’ 등이 대표적인 불계 생명의 작용입니다.
 
그 밖에도 ‘자비로운 마음’이나 ‘매사에 도전하기 위한 집중력’과 ‘착실하게 준비하기 위한 평정심’ ‘환희의 마음’ 등도 부처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힘들이 필요한 때에 적절한 형태로 나타나,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겨내 행복의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불법에서는 명익이라고 부르는데요.  
기원이 이뤄지는 신심의 공덕에는 현익과 명익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현익은 직면한 괴로움과 고민을 해결하는 것처럼, 생활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공덕입니다.
반면, 명익은 어린 나무가 세월이 지나 대수로 자라듯, 착실하게 신앙을 실천하는 속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복운을 쌓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대성인 불법은 명익이 근본입니다.
그래서 기원한 일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고 여겨져도, 그 기원은 반드시 결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강한 신심으로 끝까지 기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우주대입니다.
지구만의 것도, 현재만의 것도 아니죠, 영원히 모든 생명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근본법칙인 것입니다.
때문에 묘법이라는 생명의 대법칙을 만난 회원님들은 이미 최고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자각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인데요,
‘그렇다. 굉장하다’라는 자각을 하려면 직접 체험해 보는 수 밖엔 없습니다.
신앙과 인생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며 실제로 새겨지는 자신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기원하고 있는 것이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 실망하신 분 있으신가요?
“승부는 사람 생명의 상사이지만 최후의 승리는 부처에게 기원하라.”는 이케다 SGI회장의 말씀처럼, 기원의 결과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최후의 승리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기원하며 당당하게 인생의 실증을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 : 12/04/02 호

 

 

신입회원 교학강좌 3편

“청년과 희망”

안녕하세요?
어느덧 신입회원을 위한 교학, 그 세 번째 시간입니다.
네 이번엔 ‘청년과 희망’이라는 주제로 불법을 살펴 볼텐데요.
지금까지 새로운 역사는 청년이 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과학자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때는 스물 네 살이었고,
아인슈타인은 스물 여섯살 때,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청년에게 녹록치 않은 것 같습니다.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듯, 수많은 청년들이 지금 현실의 벽에 꿈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의 꿈, 희망은 점점 작아지는 것 같고요.
 
네 슬픈 현실인데요. 하지만 청년이기에 아직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어떤 신념과 철학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요.
 
지금부터 그 해답을 니치렌불법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불교를 처음 설했던 석존은 19살 때, 인간의 고뇌를 해결할 답을 찾기 위해 ‘왕자’라는 직위를 버리고 출가합니다.
그 후 치열한 수행 끝에 불법을 깨닫고, 평생 인도 전역을 다니며 중생구제의 인생을 보냅니다.
이처럼 ‘부처’란 현실을 떠난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청년시절의 맹세를 끝까지 실천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1222년, 일본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니치렌 대성인은 열 여섯 살 때,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게 하소서’라는 서원을 세우고, 부처의 가르침을 공부합니다.

마침내 법화경의 제목인 ‘남묘호렌게쿄’가 내면의 생명을 변혁해 행복을 만드는 최고의 가르침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이후 쏟아지는 탄압 속에서도 ‘결국은 천도 버리시고 제난도 당하여라, 신명을 바칠 뿐이로다.’(어서 232쪽)라고 결의하며 청년시절에 맹세한 민중구제의 인생을 관철했습니다.
 
이 두 성인처럼, 청년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한 인간으로서 어떤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일 것입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청년들에게
“원컨대 나의 제자 등은 대원(大願)을 세우라”(어서 1561쪽)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대원이란 자신만 생각하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 타인의 행복,
더 나아가 세계 평화까지 생각하는  신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를 만들고 미래를 여는 것은 청년입니다.
청년이 대원을 품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가학회 도다 제2대 회장도
‘청년은 꿈이 너무 크다고 할 정도가 좋다. 인생에서 실현할 수 있는 꿈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의 몇 분의 일도 안 된다.
처음부터 꿈이 작으면 무엇도 이루지 못하고 끝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춘의 실패란,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것’ 이라는 이케다 SGI회장의 말처럼, 무모해 보여도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청년일 것입니다.  

저도 청년이고, 준화씨도 청년이잖아요 근데 나이가 청년의 조건은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이케다 회장도 청년은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일념의 자세 문제이며, 마음의 경애 문제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청년의 마음으로 도전하자라고 격려해주시는데요.  
그런데 새로 입회하신 청년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불법을 통해 희망을 갖게 돼서 좋다라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네, 저도 마찬가진데요. 그래서 니치렌 불법을 희망의 불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번엔 희망이라는 측면에서 니치렌 불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지난해 인터파크 선정 최고의 책 중 하나인 ‘이케다 다이사쿠 명언 백선’,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희망만 남아 있다면, 거기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희망은 항상 출발이자 영원한 시작이다.’
그 첫 장엔 바로 희망에 관한 명언이 실려있습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말은 ‘희망’이 아닐까요.  

니치렌 대성인이 남긴 편지와 논문 등을 엮은 어서 역시 ‘희망의 경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 (어서 1253쪽)
 
이는 남편을 잃고 병든 자식을 돌보는한 여성제자에게 대성인이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지금은 겨울과 같은 역경 속 이지만, ‘반드시 봄은 찾아와 행복해진다’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법엔 온갖 어려움에도 지지 않는 희망이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도 추운 겨울과 같습니다.  
청년들이 희망을 품기 어려운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청년시절은 실패와 방황의 연속입니다.
 
이케다 SGI 회장도 청년 시절, 폐병으로 서른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고, 일하고 있던 도다 회장의 사업이 위기에 처해 월급을 못 받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청년 이케다에겐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비참이란 두 글자를 없애고 싶다’는 스승, 도다 선생님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꿈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 속에서 희망을 품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원하는 인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청년’이 지금 어떤 ‘희망’을 품고 싸우느냐로 ‘미래’는 결정됩니다.
불법에선 ‘미래의 과를 알려고 하면 그 현재의 인을 보라’(어서 231쪽)고 합니다.
 
즉 미래의 결과는 오늘 순간순간의 행동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재 상황이 어떻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철학이 바로 니치렌 불법입니다.
 
 
저도 제 꿈에 도전하면서 생각대로 안돼 좌절할 때도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 것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불법철학이었습니다.
네, 희망도 노력에서 생겨난다 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이 있기에 밝은 미래도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청년시절에 불법을 만난 것 자체가 바로 희망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네, 신입회원 여러분도 신심을 착실히 실천하면서 희망철학의 진수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입회원 교학강좌 4편 ‘불법과 사회’

계속되는 경제불황과 혼란한 정치 등..
요즘 뉴스엔 어둡고 불안한 소식들로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종교란 개인적인 소원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런데 사회가 불안정한데 그 속에 살고 있는 개인의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종교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의 목적은 개인의 구제 즉 행복의 확립과 더불어 사회 번영에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려면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내면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사회 건설을 이루었을 때 종교의 사명은 완수할 수 있습니다.”
 
즉 종교는 개인적인 행복뿐 아니라 사회의 발전까지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을 위한 종교’를 추구하며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것이 SGI의 역사입니다.
 
그럼 니치렌 불법은 이 사회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요
 
“법화경에 가로되 「모두 실상과 위배하지 않음」 등 운운. 천태 이를 받아서 가로되 「일체세간의 치생산업은 모두 실상과 서로 위배하지 않음」 등 운운 (어서 1466쪽)
 
‘모두 실상과 위배하지 않음’은 법화경 법사공덕품 제19의 한 구절입니다.
법화경을 수지한 공덕에 ‘육근청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생명의 여섯 가지 지각기관이 청정해진다는 뜻으로, 즉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올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대로 불법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공덕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현실을 떠나서는 불법은 있을 수 없으며 사회 속에 우리가 성불하는 진실한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자(智者)란 세간의 법 이외에 불법을 행하지 않는다. 세간의 치세(治世)의 법을 깊이 깊이 심득(心得)한 분을 지자(智者)라 하느니라」(<감겁어서> 어서 1466쪽)
 
또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 지자이며,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현실 속에서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불법자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즉 불법의 실천이란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 특별한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의 현실과 생활에 관심을 갖는 일입니다.  
 
현실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바로 현실 사회를 바꾸는 것이죠.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를 행복한 곳으로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니치렌 대성인은 불법자의 사명은 ‘입정안국’이라고 하셨는데요.  
‘입정안국’은 “정(正)을 세워서 나라를 평온케 한다.”는 뜻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 평온한 사회를 만든다!  
이 점에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원점이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1260년 저술한 <입정안국론>을 통해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정 사이에 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이를 위한 불법자의 사명도 제시했습니다.
 
“일신(一身)의 안도(安堵)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四表)의 정밀(靜謐)을 기도해야 하느니라”(어서 32쪽)

이 구절은, ‘사표의 정밀’ 즉 사회전체의 안온이 찾아오지 않는 한 참된 의미의 ‘일신의 안도’ 즉 개인의 안정은 얻지 못한다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자신만의 행복과 안전도 없고, 다른 사람만의 불행이나 위험도 없다’는 불교 철학을 담은 것입니다.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집필한 시대는 ‘당세(當世)는 세상이 어지럽고 백성의 힘이 약하니라’(어서 1595쪽)는 글월처럼 전쟁, 기아, 지진 등이 끊이지 않아 사회는 불안하고 민중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대성인의 입정안국은 수많은 재난으로 괴로워하는 민중의 고뇌를 없애야 한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민중 자신의 변혁으로 나라와 사회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이처럼 민중에 의해, 또 민중을 위해서라는 것이 니치렌 불법의 관점입니다.
결국 종교는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있고, 사회의 번영과 평화의 실현을 가져와야 진실한 종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종교가 현실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가는가 입니다. 이 점을 잊어버리면 본디 종교가 지닌 사회적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니치렌 불법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SGI 또한 입정안국의 실현을 위해 도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라고 해도 사회에서 벗어나 독선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그리고 세간의 사람들 즉 신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사회에서 실증을 보이고 신뢰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된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 불법에서 설하는 변혁은 그야말로 ‘한 사람’에서 ‘사회’로 넓혀집니다.
 
입정안국이라고 해도 그 근본적인 해결의 길은 “한 사람의 변혁”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불법과 사회, 불법즉사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며 큰 지표입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한 나라의 숙명전환도 이룰 수 있으며,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전환까지도 가능케 한다” 이케다 SGI 회장의 이 말에 SGI의 ‘인간혁명 철학’이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불법의 사명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사회의 행복도 한 사람, 즉 나의 행복에서 시작된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우리도 니치렌 불법이라는 올바른 철학을 통해 ‘인간혁명’에 도전하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여러분 모두의 행복을 기원드리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 : 12/09/03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