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4. 15:53ㆍ佛法 .SGI
ㅇ 인간에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반대로 살고 싶은 욕망만큼 강한 것은 없습니다. 심할 때는 남에게 해를 끼칠 망정 자기만 살려고 합니다.
죽음의 공포는 죽음으로써 인생의 종막을 고하고 생명이 없어지는 데서 일어납니다.
옛날에 “죽어도 생명이 있듯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실은 생명은 죽어도 있습니다.
법화경 <수량품>에 “방편현열반(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낸다)”이라고 있는데, 열반(죽음)은 방편(하나의 수단)이라고 설하는 것입니다. 연로하여 몸이 쇠약해지고 살기 힘들어질 때 생명을 다시 한 번 젊게 하기 위한 수단이 죽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생명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우나, 오히려 다음 생의 시작이라는 것을 실감하면 결코 두렵지 않게 됩니다.
불법(佛法)에서 생명은 무시무종의 존재라고 설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공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본존님을 믿고 제목을 올리면, 죽음을 맞은 순간 생명은 영원하며 자기 일생에 후회가 없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임종정념’ ‘일생성불’이라고 합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은 “진실한 종교, 과학적인 종교는 어떤 종교를 말하는가. 그것은 일체중생의 고뇌를 구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일체중생이 참된 행복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일체중생의 생명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체중생에게 생명의 진실한 모습인, 영원한 생명을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지적하며, 니치렌 대성인 불법이 말법에서 그 모든 조건을 갖춘 유일한 종교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ㅇ 사람은 죽으면 생명이 없어진다고 두려워합니다. 또 사람은 영원히 살기를 원하며, 생명은 영원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어느 유명한 작가는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하면 그것은 후세에 남는다. 그 후세에 남긴 위대한 일 속에 자기가 살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특히 후세에 남는 위대한 일을 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나 개와 고양이 등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등에서는 죽은 후에도 ‘영혼’은 남으며, 최후의 심판 때에는 다시 생을 받아 신(神)의 심판으로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떨어지는지가 결정된다고 설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활동상에서 마음과 몸의 작용 이외에 영혼 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현대 과학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며 불법에서도 그것을 부정합니다.
이런 생각은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면서 그것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이 여러 방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1943년부터 약 2년간 일본 군부의 탄압에 의해 사실무근의 죄로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때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불결한 구치소에서는 이가 많이 번식한다. 이 두 마리를 판자에 놓고 한 마리를 죽였는데 다른 한 마리는 그런 것에 전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 죽은 이의 생명은 도대체 어디에 갔는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어진 것일까. 벚꽃의 가지를 꺾어서 꽃병에 꽂아 놓으면 꽃이 피고 새잎도 나온다. 이 가지의 생명과 원래의 벚나무 생명과는 다른 것일까, 같은 것일까. 생명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그때의 심경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목을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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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은 감옥에서 본존님을 마음속에 그리며 제목을 부를 때 법화경에서 설하는 허공회(虛空會) 의식에 자신이 지용의 보살의 권속(眷屬)으로 그 곳에 있었던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묘법을 광선유포하기 위해 말법(현대)에 태어난 것을 확신했습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을 구원원초(久遠元初)의 자수용신(自受用身)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대성인이 무시(無始)의 옛부터 무종(無終)의 미래에 걸쳐 이 우주생명을 관철한 근본 법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깨달으신 부처라는 뜻입니다.
부처의 생명이 무시무종인 것처럼 우주도 우리 생명도 무시무종이므로 본존님을 믿음으로써 부처의 생명에 접하게 되어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도다 제2대 회장은 “생명은 우주와 함께 존재하고 우주보다 앞서지도 않으며 후에 우발적으로 혹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우주 자체가 이미 생명 그 자체며 지구만의 전유물로 보는 것도 잘못이다. 우주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조건만 갖춰지면 어는 곳에서도 생명의 원체(근본이 되는 물질)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수십억년 전에 어느 별에 인류가 살고 지금은 지구에 서식하며 번영하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한 점이 없다. 생명은 우주와 함께 본유상주(本有常住: 본래부터 존재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 항상 존재하는 것)의 존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영화 ‘E.T’가 대단한 화제가 됐는데, 실제로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이 다른 별에 있다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이 우주에 지구와 흡사한 별이 적어도 1만에서 1백만 혹은 수천만개 존재하며 거기에 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구인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진 우주인이 존재한다면 언젠가는 진짜 E.T가 지구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ㅇ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에는 생명의 영원성을 “나는 실로 성불한 이래 구원함이 이와 같도다” “나는 부처가 된 이래 거친 바의 모든 겁수는 무량백천만억 재아승기이니라”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즉 인도의 석존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오백진점겁이라는 아득한 과거 즉 구원의 옛날에 이미 부처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원실성(久遠實成)’이라고 합니다.
석존이 설한 법화경 이외의 경문에는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난 실달태자(석존의 어렸을 때 이름)가 19세에 출가해 수행해서 30세 때 깨달음을 열어 부처가 됐다고 설했습니다.
이것을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법화경에 이르러, 석존은 구원부터 부처였다고 설하므로 제자들은 놀라며 도저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점을 명확히 밝힌 법화경이 모든 경문 중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 죽음으로 인해 끝난다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어려운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태어날 때부터 중병에 걸려 불행한 사람도 있고 반대로 좋은 환경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런 차별이 발생할까요. 또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그 반대로 잘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인(因)을 만들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고 나쁜 인을 만들면 나쁜 결과가 나옵니다.
인을 업(業)이라고도 하며 업은 신구의(身口意)의 ‘삼업’이라고 하는데 몸으로 움직인 것, 입으로 말한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명활동을 말합니다.
자기의 생명과 생명에 이익이 되는 업은 선업(善業)이 되어 선과(善果)를 만듭니다. 반대로 불이익이 되는 업은 악과(惡果)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인과의 법칙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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