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19. 10:09ㆍ佛法 .SGI
(일본에서 온 체험담 )
.. 간사에서 왔습니다.
가꾸지입니다. 저는 교오또의 유전회사를 경영하는 가정의 6형제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종교는 진언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46세때 저를 임신하였는데 고령으로 6개월만에 조산하였습니다.
그때의 저의 모습은 머리털이 하나도 없고, 손톱도 안 나오고 몸은 또 내장하수로 '폐, 심장, 위'가 하복부에 뭉쳐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좌반신은 마비되어 괴물같은 모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소아마비였다고 합니다. 또 치아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개도 나지 않았습니다. 유복하고 무엇하나 부자유스러운 것이 없는 가정에 태어났으나 우리 집안은 저 한사람으로 인해서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주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경도대학병원부터 시작하여 병원이라면 가리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용하다고만 한다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신앙도 좋다고 하는 것은 다해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은 다해보았습니다.
시꼬꾸에 아주 유명한 박사가 있다고 하여 최후의 희망을 걸고 마써야마에병원 가까이 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하고 입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몸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현대의 의학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군요." 하며 최후에는 손을 떼어 버립니다. 비싼 치료비만 지불하고 힘없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제가 16세때가 되던해 5월에 어머니가 이틀간의 예정으로 간사이에 볼일이 있어 갔었습니다. 모르는 집 앞을 지나는데 그때 '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소리에 이끌리다시피 그 집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절복 좌담회였나 봅니다.
"그런 좋은 신심이 있다면, 저도 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그 자리에서 입신을 하였습니다. 소화 31년 5월 21일입니다. 그리고 필사적인 제목을 봉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정신이상이 되어 미쳐 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종교에는 '정법'과 '사법' 이 있다고 가르쳐 주시며 저를 강제적으로 입신시켰습니다.
16살인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본존님 앞에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에는 안 보이나 철로 된 벽 같은 것이 있어서 억지로 무리해 앉아 있으면 기절을 해 버립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찬물을 끼얹고 얼굴을 마구 때리고 하여 정신을 차리게 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원원겁부터의 여러 가지 방법을 한 결과였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는 본존님 앞에 흙단으로 짠 책상을 놓고 거기에다 저의 몸을 붙들어 잡아 놓고 앉혀 놨습니다. 식사 때와 자는 시간 이외에는 거기에 앉혀놓고 근행, 창제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한 결과 차차 근행 창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저를 건강하게 해 주려고 매일매일 날마다 절복을 하러 나갔습니다. 16세대의 절복이 되었을 때 마비되어 차가웠던 왼쪽다리가, 또 17㎝나 짧았던 왼발이 오른쪽다리와 똑같은 길이로 길 게 늘어났습니다. 그것도 몇 달이 걸려서 길어진 것이 아니고 일주일 동안에 길 게 늘어났습니다. 밤중에 축인시 근행이 끝나면 뼈가 소리를 내면서 길어진 것입니다. 저는 기쁘다기 보다도 오히려 어본존님의 위대한 불력법력의 위력에 두려움이 더 강하게 머리에 꽉 박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32년 17세 때 다리가 나아서 걷게 되었으므로 어머니와 같이 동행하여 절복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내장하수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던 몸이라 걸을 때마다 내장이 내려와서 그 괴로움이라는 것은 도저히 말로는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비틀 비틀하는 저를 택시에 태워서 절복을 다녔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가발을 쓰고 틀니를 하고 있었지만 절복을 나갈 때는 가발도 벗기고 틀니도 빼고 내 생긴 모양 그대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비웃고 아이들은 기분 나쁘다며 놀리면서 돌을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18살의 나이로서 창피하고 부끄러워 그 괴롭고 쓰린 체험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서 절복을 하는데 심장협심증으로 호흡곤란이 왔습니다. 그 집에서 "우리 집에서 죽으면 곤란하니, 빨리 데리고 가시오!"하면서 우리를 병원으로 싣고 갔습니다.
어떤 집은 "저 애가 건강해지면 나도 신심하지요!"하며 찬물을 끼얹는 적도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4개의 격언(염불무간, 선천마, 율국적, 진언망국)을 당당하게 말하는 어머니의 늠름한 모습에 본존님의 위대함을 다시 깨달으며 신심하게 되었습니다. 1년후 제가 19세가 되던 34년 어머니와 같이 개인 절복 158세대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대 공덕을 받았습니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는데 봄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머리카락이 나왔습니다. 또 핑크색의 조그마한 손톱도 나왔습니다.
개목초의 1절 『나의 제자 제난이 있을지라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느니라. 천(天)의 가호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현세의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지어다』 라는 금언을 마음에 되새기며, 괴로울 때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킨 적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35년 5월 3일 어머니가 장암에 걸렸습니다.
어머니 수술후 10월에 언니가 위암에 걸렸습니다. 36년 제가 21세때 위암에 걸려 셋이 똑같이 암에 걸렸습니다. 암이라는 병은 잘 아시겠지만, 초기, 1기, 2기, 3기가 있는데 언니는 조기 발견이 되어 초기이어서 수술을 하지 않고 저는 1기여서 다른데 까지 전의되지 않도록 위의 절제수술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방법의 죄의 무서움과 숙업의 깊음과 권속묘의 불가사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목을 올리면서 웃는 얼굴로 병원 안을 돌아다니시면서 열심히 절복을 하였습니다. 또, 언니의 창제에 창제를 거듭하는 모습에 나도 용기가 솟아나서 생명의 오저로부터 본존님께 감사가 우러났습니다. 저는 수술 후 29일 만에 좀 무리라고 했으나 퇴원을 해서 어머니와 같이 1개월간 지방 절복 전에 참가했습니다.
오리가 넘는 십리 가까운 고개 언덕길을 넘어갈 때는 피를 토하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배가 아파서 밤을 꼬박 세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숙명 전환하고 말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용기가 나오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하고 식사도 달라서 어머니는 식사 때마다 본존님께 공양 올린 후에야 저를 먹게 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이를 악물고 1개월간의 절복전을 끝내고 귀가했습니다. 언니는 시집식구들이 가족전원 신심을 반대하였지만, 생명을 걸고 본존님을 믿고 신행학에 면려했습니다.
37년 언니가 먼저 암이 완쾌되고 그 다음에 어머니가 완쾌하고 그 다음에 제가 완쾌하였습니다.
그때 위암만이 완쾌한 것이 아니고 몇 해를 두고 오랫동안 고생했던 '내장하수, 신장병, 간장병, 심장협심증'도 다 한꺼번에 완쾌됐습니다. 세 모녀가 숙업전환을 한 것입니다. 입신한지 5년이 될 때 21살에 또 다시 어본존님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금언을 되새기며 세 모녀가 감사의 제목을 한없이 올렸습니다.
저희들을 위하여 동지 여러분들이 하루에 한 시간씩 제목을 보내 주셨습니다. 동지의 감사함과 선배님의 지도 덕분으로 도중에 좌절하지 않고, 잘 신심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42년 현재의 남편을 절복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모 형제는 "이제 겨우 본존님의 공덕으로 건강하게 된 몸인데" 하며 결혼에 반대했지만, 그것을 물리치고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제일 기쁘게 지내야 할 신혼 시절에 신앙 활동에만 하루를 보낸다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산부인과 진찰을 받았더니 의사의 말이 현재의 저의 건강 상태로는 무리하다며 그냥 두면 모자가 둘 다 자살 행위라고 낙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를 참 좋아했습니다. 산부인과를 7군데나 가 보았으나 의사의 말은 하나같이 모두 낙태하라고 했습니다.
오는 길에 남편은 너무 슬퍼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어 버리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이 바로 남편에게 실증을 보일 때구나"하고 다음의 결의를 하고 성교신문 배달과 하루에 1만번 제목과 1달에 1세대 절복을 해 냈습니다. 임신 9개월 만에 신문 배달하던 도중 웅덩이에 빠져서 허리를 몹시 아프게 찧었습니다.
그리고 40분 후 출산을 해서 맏딸을 낳았습니다. 의사의 말이 "1주일이나 열흘만 늦었더라도 자궁이 파열되어 모녀의 생명을 구할 수 없을 뻔했다."고 하더랍니다.
저는 본존님이 미래의 대붕을 주신데 감사하고 남편은 어린애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습니다. 그 후 남편은 반장의 임명을 받았습니다. 50년 8월 - 그 전날까지 원기 왕성하게 학회활동을 하시던 어머님이 아침에 일어날 때가 되었으나 방에서 나오지 않아, 방에 가보니 밤새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진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승려도 보고 감탄했습니다. 사상이 너무 아름다워 그것을 보고 "나도 죽은 모습이 저런 사상이 된다면 신심하겠다."고 하여 남녀가 21명이 그 자리에서 입신을 하였습니다.
죽은 후에도 절복 실천을 하는 어머님에게 나도 동지들도 존경함과 동시에 신앙의 위대함을 재삼 배웠습니다. 53년 남편의 몸이 너무 말라서 건강 진단을 받아보니 위와 십이지장 입구의 암이라고 했습니다. 약 1년간의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악성이면 반년밖에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체험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고 '살아서 제목을 부르는 한 금생에 나오는 숙업은 숙명전환 할 수 있다.' 는 대 확신으로 둘이서 창제에 창제를 거듭하는 한편, 힘이 있는 한 절복에 뛰어다녔습니다.
54년 4월, 4개월 후 병원에 재진을 받으러 갔더니 진단 결과 위에도 십이지장에도 암의 흔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재삼 본존님의 공덕을 생명 오저로부터 감사하며 생명이 있는 한 광선유포에 사명을 완수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도중에 좌절하지 않고 신심을 관철하게 된 것은 동지 여러분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한 어머니와 남편에게도 감사합니다.
어린 아이는 지금 중학 1년생이 되어 명랑하고 소박하게 중등부원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본존님께서 주신 이 목숨을 일가화락의 신심으로 어떠한 고난이 있을 지라도 정면으로 대결하여 지역활동에 광선유포에 절복홍교에 매진할 것을 맹세합니다.
감사합니다.
(일본 장년부 체험담)
저는 유미하치본부 사셔호 지부의 지구장 고무라 라고 합니다.
경사스러운 장년부 결성기념 근행회에서 체험발표를 하게 된 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9월3일 ‘간장’에 이상이 있는것 같아 검사를 받은결과, 9월27일 앞으로 2개월-길어야 3개월의 목숨으로 손쓰기가 늦은상태 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를 아내로부터 ‘간암’이라고 들었을 때 나는 “이거 큰 일났구나. 어떻게하면 이 숙업의 산을 타고 넘을 수 있을까” - 한동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지금도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생각되는 것은 “묘(妙)란 소생의 뜻이니라” 라는 수많은 훌륭한 체험을 보고 들었기 때문인지 불안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妙의 三意 - 具(원원구족), 開(불성을 연다), 蘇生(살아난다]
다만 이젠 급해졌구나. 제목 열시간에 도전하고 맹렬하게 절복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으나 실제로는 제목이 올려지지 않았습니다. 여간해서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럴때 가족들이 필사의 제목을 해 주었습니다. 또 지구, 지부, 지역의 간부와 회원들이 창제를 해 주었습니다. 곁에서 제목을 올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학회 회원들이 그렇게 고맙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던중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와다가 부권장 부부로 부터 아내가 자세한 지도를 받고, “스지 부회장의 지도를 받으세요” 라는 권유를 받고, 마음먹고 아내가 10월14일 스지 부회장의 지도를 받으려 동경에 갔었습니다. 그 지도 테이프를 침대위에서 들은 것이 10월 16일 오후입니다.
그 지도대로 실천한 결과 어본존의 공덕으로 오늘의 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서를 통하여 체험을 말씀해 주시는 한시간 반에 걸친 무시무시한 지도입니다. 이지도의 일단을 소개하면서 나의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먼저 병의 원인을 밝히기를 “당신은 어본존이나 신심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바보처럼 여겨 비웃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와 선조의 방법(謗法;생명법률 위반-우주근본법위반)도 함께 되어 비웃은 죄장으로 ‘간암’이라고 하는 몹쓸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라고, 그리고 근행,창제의 올바른 자세를 철저하게 지도해 주셨습니다. [*신을 믿고 기도하면 신경에, 어본존을 비웃으면 내장에 병이 온다]
- 먼저 “선조의 방법, 우리집의 방법과 자신의 방법을 강하게 참회하고, 그래도 당신은 가볍게 받고 있는 것이다. 전중경수로 아프지도 않다. 식사도 할 수 있고, 여위지도 않았다. 공덕이다. 감사하세요”
- 다음으로 “맹서이다. 자신의 방법이니까 자신의 책임이다. 자신이 만들었으니까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 나는 부처의 경애를 얻고 나서 왔다-삼신여래를 남의 도움없이 스스로 경애를 열었다)’라고 자아게에 있지요. 지구장으로서 선조의 몫까지 자신이 어본존의 손발이 되어 광포에 매진 할테니 그 실증으로서 건강한 ‘간장’으로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원하세요.
- 상칠대 하칠대 상무량생 하무량생(어서1430)의 부모가 성불되는 어본존이시다. 자신이 성불된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제목의 빛은 일념삼천으로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비치게 된다. 어본존 밖에는 없다. 어본존이 당신속에 색깔도 모양도 없이 용해되어 있다. 그래서 십계라고 말하겠지요. 십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불계 불성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수근이불견(雖近而不見: 부처님은 가깝게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이라고 경문에 있지 않습니까.
- 부처의 불성을 나타내는 의식을 근행,창제라고 합니다. 근행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불성은 나오지 않는다. 이 불성, 어본존님과 같은 역용이 나와서 병이 치유되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어본존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해야 한다. 아무나 만날 수 없는 어본존이시다.
- 어본존은 나의 마음속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일념에 따라 일체가 결정되는 것이다. “ 이 어본존을 전혀 밖에서 구하지 말라. 다만 우리들 중생이 법화경을 수지하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흉중의 육단에 있느니라.” 라고 어서말씀에 있습니다. 가슴속, 육체속에서 ‘물씬’‘물씬’ 어본존과 같은 생명이 솟아오른다고 생각해라. 솟아오르게 되면 나 자신의 불성이다.
- 이번에는 그 솟아오른 부처의 생명을 뼛속까지, 혈관속까지, 온몸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골수까지 스며들지 않는 제목은 큰 손해이다. 머리끝에서 부터 발끝까지 제목을 스며들게 하여 몸속을 부처의 세계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기원을 집중시켜 간장(아픈부분)까지 제목이 이르고 스며들게하면 암등 어떤병이든지 낫게 된다.
- 어본존님의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공덕을 100억원이라고 한다면 암같은 것은 1백원이나 2백원으로 낫게된다. 어본존은 어버이시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 어본존은 나의 재산을 모두 가져가라. 이것이 어본존이시다. ‘아역위세부 구제고환자(我亦爲世父 救諸苦患者: 부처님은 이세상의 아버지시며, 모든 고뇌와 슬픔을 구제해 주신다)’라고 경문에 있지 않은가.
- 제목으로 몸속을 불도저로 청소하는 것 같이 ‘빙빙’ 돌리면서 세탁하여 헹구고 헹구어서 암등 나쁜병을 쫒아내라. 목표를 공격하는 제목을 올려라. 우리들의 머리는 ‘묘(妙)’이고 목은 ‘호(法)’이며 가슴은 ‘렌(蓮)’이고 배는 ‘게(華)’이고 다리는 ‘쿄(經)’이니라. 이 오척의 몸이 “묘호렌게쿄”의 오자, 우리들이 “묘호렌게쿄”오자 라고 개불지견(開佛之見: 불계를 여는 것을 성불)했을 때 즉신성불 하느니라. 개(開)란 신심의 이명(異名)이니라.(우리몸 안의 불성을 여는 것을 즉신성불)
- 이것을 자각했을 때 기뻐서 기뻐서 견딜수가 없게 된다. 남묘호렌게쿄는 사자후라고 말하지요. 어떠한 병, 어떠한 문제라도 올테면 오라. 전부 치유하겠다. 이것이 어본존님이시다. 목이 말라 물을 구하듯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듯이 ‘심회연모 갈앙어불(心懷戀慕 渴仰於佛: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를 그리워하며, 갈앙하다 )’ 한번 한번의 제목을 ‘소중히 소중히’ - 결코 수가 문제가 아니다. 시간도 아니다. 골수에 스며들어 가는 것과 같은 ‘맛있다, 맛있다’ 라는 제목을 올리세요. ‘차대양약 색향미미(此大良藥 色香美味: 이 대양약은 색도 향도 맛도 좋은 것이다) 라고 있지 않은가.
- 어본존이 우주속의 모든 엑기스를 전부 모아 가지고 와서 갈아 만든 대양약이다. “개실구족 도사화합(開悉具足 擣簁和合; 색깔도 맛도 모두 갖추어진 약초를 구해 혼합해서)” 이라고 있지요. 다만 ‘맛있다, 맛있다’ 라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것과 같은 제목을 올리세요. -그러나 여간 해서는 그렇게 잘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 졸립다 귀찮지만 오좌근행을 할까. 밤에는 삼좌 근행을 조금하고, TV를 조금 보고 빨리 잠을 자야지. 입으로만 뻐끔 뻐금하고, 이러한 근행으로는 골수까지 혈관속까지 스며들지 않는다.
- 그런제목은 못쓴다. 경문에도 있지요. ‘행도불행도(行道不行道: 부처의 가르침을 열심히 믿는 것을 행도, 불행도는 자행화타에 걸쳐 태만한 행위)’ - 行道(행도)란 환희와 확신의 제목이다. - 不行道는 싫어 싫어하는 제목, 게으름 피우는 제목, 원질하는 제목이다. - 아무리 형식만으로 해 보았자. 그것은 모두 불행도이다. 자기 자신의 일념대로 되지 않는다. ‘명의조람(冥의照覽; 부처는 우리속 마음을 모두 알고 있다)’ 이라고 있지요. 다른 사람이 보고 있든지 없든지 착실하게 하는 것이다.- 3주만 해보세요. 반드시 낫을 거여요... 이상과 같은 테이프를 듣고 .....
아-아- 나는 방법, 대방법을 저질러 내 몸속의 부처를 용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20년이나 신심을 해도 진정한 근행의 방법, 기원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구나!
아버지도 간장암, 어머니는 정신분열증, 동생은 위암, 여동생은 심장병으로 죽고- 선조도 괴로워하고 있는데, 20년간이나 타성에 젖은 신심을 했으니- 어본존께 참으로 죄송합니다. 라고- 참으로 반성하고 참회했습니다. 눈물이 그칠 수 없이 흘러내려 가족들 앞이었습니다만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밤에는 테이프를 몇번이고 몇 번이고 듣고, 어서를 배독하고 눈물이 나와 할 수 없이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 썼습니다.
그리하여 10월 22일의 밤의 근행때부터 스지 부회장의 지도대로 실천하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학회원임을 밝히고 신심을 하고 있으므로 아침과 저녁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주치의의 허가를 아내가 받았습니다. 병원측에서는 이러한 허가는 처음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허가를 해 주었는데 의사로서는 11월말쯤에는 죽을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입원하고 있어도 약하나 제대로 주지 않고, 주사 한 대도 없었습니다. 다만 검사한다고 철판으로 몇군데 묶어놓고는 좋을대로 버려 두었습니다. 검사일 이외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퇴원하는 날까지 비오는 날이나 바람이 부는 날에도 한결같이 집으로 가 집안의 어본존님께 창제를 하였습니다.
지도대로 실천하니 일주일이 지나자- 무시무시한 생명력이 용솟음 치는것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의사로부터 “ ‘암’이 녹아 나간 것 같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2주째 들어가니 ‘맛있다, 맛있다’ 제목은 바로 이것이로구나! 아-! 이러한 근행, 창제를 스지 부회장님은 말한것이다.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대환희의 창제를 맛 볼수 있었습니다. 생명력이 힘차게 약동하는 듯 하였습니다.
“암 같은 것이 무엇이냐! 어본존의 광대심원한 역용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신이 만든 방법과 죄장이 아닌가! 나의 제목으로 없앤다. 죽을 수 만은 없다. 광포를 위해서 실증을 보여 주세요! - 그 실증을 가지고 어본존님의 손발이 되어 선조의 몫까지 힘쓰겠으니, 그 사명으로서의 대실증을 보여 주세요” 라고 기원하니 실로 무시무시한 생명력이 용솟음 쳐 올랐습니다.
17일째쯤 명치쪽에 있던 어린애 주먹크기의 납덩어리와 같이 무겁던 것이 말끔히 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겼다. 나는 암을 극복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참으로 인과구시 불가사의한 일법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일념의 인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념을 어떻게 갖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법칙)
생명적으로 이미 암에서 이겼다. 이제부터 더욱 더욱 좋아진다 라고- 어본존님께 감사의 제목을 올리고 또 올려 나갔습니다. 감사와 환희는 더욱 더욱 생명력을 불려 일으켰습니다. 3주째쯤에는 이젠 다 나았지 않느냐 고 생각할 정도로 몸이 가볍고 불쾌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입원중에는 매일같이 불법대화, 신문계몽, 회원을 순회-격려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다른 병원으로 또는 우리지구에 들어가 나의 실증을 가지고 격려하며, 정말 기뻐서 환희차서 웃으면서 돌아 다니며 홍교했습니다. 홍교가 이처럼 환희로운 줄은 여러 체험담을 통해서 많이 들어보았으나 나는 처음 몸으로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5일 스지 부회장에게 중간보고 하고, 12월 12일에는 이즈미 부회장의 지도를 들을수가 있게 되었으며, - 신심은 확신이구나 - 이제는 꼭 낫는다는 절대적 확신이 들었습니다. 과거 원원겁이래의 나의 적과, 나 자신의 헤아릴 수 없는 방법,죄장을 소멸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힘이 있는한 생명이 있는한 싸워 대복운에 살아 가겠습니다. 간장암 말기의 인간이 지도대로 실천한 결과 소생하여 살아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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